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야기는 내가 취업준비를 하기도 전, 내 생에 첫 사회생활인 인턴을 준비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내 지도교수님이셨던 K교수님은 아주 좋으신 분이었다. 해외 연구소에서 박사로 커리어를 보내시다가 같은 학교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어 그 좋은 커리어를 마다하고 모교 교수로 부임하셨다.
나이도 30대 후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젊고 능력 있는 교수님이라 다들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분의 지도학생이 되었고, 그분의 실험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가깝게 지냈던 나를 교수님께서는 많이 챙겨주셨고,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대기업 P사에서 체험형 인턴을 모집하는데 지원해 볼 생각이 없냐고 하셨다. 당시 3학년이었던 나는 아직 취업준비에 대한 개념도 없거니와, 나는 대기업을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 망설였다.
'올디야,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일단 지원서를 내보는 게 어때? 지원서 작성만 준비해도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이 한마디에 홀린 듯이 지원서를 펼쳐 들었고, 하나씩 지원서를 채워나갔다.
지원서는 정말이지 채우기 어려웠다. 당시 스펙이라고는 준비되어 있지 않던 나에게 지원서는 빈칸이 너무도 많았다. 그렇게 정말 기대 없이 겨우겨우 지원서를 채워서 제출했다.
며칠 뒤, 그렇게 등 떠밀려 제출했던 지원서가 합격이라는 소식으로 돌아왔다. 기쁨보다는 황당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런 지원서가 합격을 해도 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서류 통과 후에는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당시 면접은 PT면접과 인성면접으로 총 2번 봤었는데, PT면접을 할 자료를 미리 준비해 가야 했다.
당시 듣고 있던 취업 관련 교양수업이 있어, 교양 교수님과 지도교수님 두 분에게 피드백을 받아 자료를 준비했다. 합격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내가 준비했던 자료는 교양수업에서 Worst PT 자료 사례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Worst 자료와 함께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면접관 1분에 지원자 3명이 들어가는 형태였는데,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면접을 보다 보니 별로 긴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게 좋게 작용했는지 면접까지 합격해 버렸다. 이때 P사 인턴을 합격하면서 나는 하나의 큰 교훈을 얻었다.
'손해 볼 것 없으니 일단 지원하면 얻는 게 생긴다.'
내가 취업준비를 하는 데 있어 가장 모토로 삼았던 교훈이다.
아무튼 인턴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열정적으로 취업준비를 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대기업 생활은 어떤 지 간접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이력서에 강력한 한 줄의 무기가 생겼고, 가장 중요한 자신감이 생겼다.
이 기세를 몰아서 4학년 2학기 내내 취업준비를 했다. 도합 서른 곳이 넘는 소위 대기업에 지원을 했고, 그중 단 한 군데의 회사에만 서류를 합격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지만, 합격한 하나의 회사라도 면접까지 가보고 싶었다. 이 기회에 경험을 많이 해두고 싶었다.
인적성 책을 한 권 사서 준비했고, 남들보다 쉽게 인적성 시험을 통과했다. 이건 순전히 운이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왜 합격했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도전하는 자에게 운이 따라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인턴생활에서 만난 형의 소개로 면접스터디에 겨우 들어갔다. 거기서 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면접준비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면접은 내 생각보다 훨씬 압박면접이었다. 당시 합격한 회사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던 나는 면접관들에게 그 마음을 간파당한 듯했다. 부실한 지원동기 덕에 면접 시간의 절반 가량을 꼬리질문 방어에 소진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던진 한마디에 면접관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꼬리질문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저는 사실 ㅇㅇ회사가 좋아서 지원한 것은 아닙니다. ㅇㅇ직무가 좋아서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당시 내가 지원한 회사 중 내가 합격한 직무를 뽑는 회사는 ㅇㅇ회사뿐이었다. 이 점을 말씀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시면서 면접 마무리가 잘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ㅇㅇ회사에 합격을 했고, 현재까지 다니고 있다.
이렇게 우여곡절과 적당한 운이버무려져 지금 회사에 합격할 수 있었고 아직까지 다니고 있다.
당시 나는 입사만 하면 어떻게든 다 잘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입사 후 첫 관문인 연수원부터 고민이 많아졌다. 다른 직원들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내가 주위의 잘난 동료들을 보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좀 더 중심을 잡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