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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멈가 May 26. 2024

역치를 넘기면 역량이 됩니다


영어도 못 하는 주제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호주로 떠났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계좌에 남은 돈은 고작 30여만 원. 한국행 저가 항공권을 간신히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귀국할 것인가, 버티며 끝까지 일을 구해볼 것인가. 나는 선택해야 했다.



호기롭게 떠났던지라 그냥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결국 남은 30만 원으로 최대한 아끼며 버텨보기로 했다. 마트에서 가장 저렴하고 큰 빵을 사서 조금씩 나눠 먹으며, 구직활동에 나섰다.



"일자리 없나요? 설거지, 청소 등 다 잘해요."


낮에는 직접 가게를 돌며 발품을 팔았고, 저녁엔 구직 사이트를 이용했다. 가끔 기회가 찾아왔지만, 너무 서툰 영어 실력에 매번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끝까지 보류하던 일을 하기로 했다. 영어를 못 해도 크게 지장이 없고, 늘 사람이 부족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건설 현장 노동직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했지만, 그 일은 상당히 고됐다. 덕분에 나는 매일 체력의 한계를 테스트해 볼 수 있었다.



예로부터,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호주에서 반년 동안 막노동을 했던 경험은 평생에 걸쳐 내게 영향을 주고 있다. 물론, 요즘 그런 소리를 하면 '젊었을 때 고생하면 늙어서 아프다'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 옛말이 현대에는 안 맞을지 몰라도, 막노동 경험을 통해 내 체력적 역치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어느덧 호주에 다녀온 지도 십 년이 지났다.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연구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회사든 마찬가지겠지만, 육체노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창고 정리라든가, 새로운 장비가 들어와 운반해야 한다던가. 그런 일이 생기면 다들 죽을상을 한다.



반면, 나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호주에서의 일을 회상한다. '그때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웃음이 난다. 역치를 넘기니 내 역량이 된 것이다.



역량은 늘 그런 식으로 향상된다. 100편이 넘는 논문을 읽고, 직접 논문을 써본 뒤로는 저널 미팅에서 논문 한 편을 발표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처음엔 1,000자 글쓰기도 어려웠지만, 매일 1,500자 이상씩 쓰는 연습을 하니, 이제 1,000자쯤은 단숨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성장기의 파충류는 탈피를 자주 한다. 몸이 커지면서 원래의 피부가 버티지 못하고 벗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탈피를 반복하며 성장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 역량을 초과하는 일을 만나면, 스트레스부터 받지 말자. 그 일을 마땅히 반겨야 한다. 덕분에 기존의 역량을 벗어내고 또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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