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잘 버텼다. 그런데 오늘, 먹고야 말았다. 당이 충전되니 후회가 밀려왔다.
올여름 초, 작년까지 잘 입던 옷이 맞지 않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렴풋이 살찌고 있음을 알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하지만 더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다이어트에 있어서, 내게 가장 어려운 게 바로 당을 끊는 것이다. 식사 조절도, 운동도 곧 잘하는데 유독 군것질만큼은 참기가 어렵다. 특히 기진맥진해서 퇴근하는 날엔 더욱 그렇다. 홀린 듯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단 걸 찾게 된다.
보통 67~70kg 사이의 몸무게를 유지한다. 그 이상이 되면, 운동과 간헐적 단식(16시간 공복)을 통해 체중을 줄인다. 문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몸무게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20대 땐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감량했다면, 지금은 1~2kg 빼는 것조차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왜 남성은 30대가 되면, 이토록 쉽게 배가 나오도록 설계되었단 말인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런 나의 노력을 알지 못한다. 그저 '살쪘어요?' 혹은 '살 빠졌어요?'로 안부를 물을 뿐이다. 지극히 한국에서만 물을 수 있는 안부이다. 이 부분에 대해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인사치레 정도로 생각한다. 딱 거기까지라면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말은 따로 있다.
"살 안 찌는 체질이라 부럽다~"
살 안 찌는 체질이라 부럽다는 그 말은 나의 발작 버튼이다. 내가 흘린 땀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점심 식사로 샐러드를 먹다가 그 얘기를 들었다. 그 사람의 테이블엔 라면과 김밥이 올라가 있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얼마나 노력하는지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침묵한다.
'그래, 많이 드세요.'
사람들은 대개 결과만 본다. 그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과 노력은 잘 보지 못한다. 아니, 보지 않는다. 그래야만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 어쩔 수 없다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성공한 사람을 보면, ‘나도 부모님만 잘 만났으면’
자수성가한 사람을 보면, ‘나도 머리만 좋았으면’
투자에 능한 사람을 보면, ‘나도 목돈만 있었으면’
저축하는 사람을 보면, ‘매달 나가는 돈만 없으면’
매일 운동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시간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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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은 끝이 없다.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하는 동안 발전적인 삶과는 더욱 멀어진다. 현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끔은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지만, 잠시뿐이다. 곧 하지 말아야 할 수십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결국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변하고자 한다면 한 가지 사실은 알아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언가를 쟁취한 사람은 그만한 비용을 치른 것이다. 그들은 유혹을 뿌리치고, 결단을 내리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이다. 노력을 가시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창 바디프로필이 유행할 때, SNS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며 '나도 바프나 찍어볼까'하는 사람을 다수 봤다. 대개는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이들이었다. 사진에 찍히지 않은 노력을 보지 못해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날, 지인이 짜잔-하고 멋진 성과를 내보인다 해도, 그것은 정말 한 순간에 얻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게 타인의 노력을 볼 줄 알아야 나도 변화할 수 있다.
쓰고 보니,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지 않았다고 투정 부린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옹졸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흘린 땀을 온전히 인정받고 싶은 옹졸한 남자다. 하지만 그 땀의 무게를 알기에, 다른 사람의 노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가 치렀을 대가를 조용히 가늠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