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를 만나고 크게 바뀐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식습관이다. 먹는 즐거움을 조금씩 깨달아 간달까? 예전엔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떡볶이나 햄버거 정도였다. 물론 지금도 떡볶이와 햄버거는 최고지만, 이제 10월이 되면 대하구이가 생각난다.
"한 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는 약이 나왔으면 좋겠어."
그간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해왔다. 그러나 인정해야겠다. 아내를 만나고 나의 음식 세계관이 확장되었다. 이제는 나도 함께 즐긴다.
그렇다고 아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상하다. 그녀는 먹기 위해 사는 듯하다. 단순해서 고민이나 걱정이 많지 않은 편인데 유일하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바로 '오늘은 뭘 먹을지'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이라도 하는 걸까? 마지막 식사인 것처럼 한 끼 식사에 진심을 다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정의 평화는 음식에 달려있다. 그토록 심사숙고해서 고른 음식이 맛없기라도 하면 그날은 집안 분위기가 별로다. 반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면 하루 종일 춤을 춘다. 진짜 왜 그러는 걸까?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약 7년 전, 아내와 처음 식사를 한 날에도 우린 대하구이를 먹었다. 생소했다. 보통 남녀가 처음 식사를 할 땐 파스타 같은 걸 먹지 않나? 편협하다 할지 모르지만 내 상식으론 그랬다. 게다가 난 대하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먹었는데 기억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랫동안 안 먹은 건 사실이다.
그날 눈앞에서 커다란 새우를 산 채로 굽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다. 새우는 원래 빨간 색이 아니란 걸 처음 알았다. 새우의 까만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다. 나는 새우의 시선을 회피하며 머리를 분리하고 몸통만을 간신히 먹었다. 아내는 내가 모아놓은 머리를 먹어도 되냐 묻더니 모조리 가져갔다. 어떤 면에선 신선했다.
부부는 닮아간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이제는 나도 새우 머리를 좋아한다. 머리를 모아 버터구이 해서 맥주와 먹으면 최고의 안주다. 그런 식으로 양꼬치, 꽃게찜, 마라롱샤, 그리고 최근엔 전복구이까지 배웠다. 앞으로 또 못 먹던 음식을 먹을 생각하면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궁금하다.
한 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는 약은 내가 아니라 아내에게 더 필요해 보인다. 그것만 아니면 벌써 내 집 마련에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곧 아내의 퇴근 시간이다. 곧 그녀에게 이렇게 카톡이 올 것이다.
"저녁 뭐 머글래?"
카톡 대화방에 '머글'로 검색하니 수백 가지 버전의 '뭐 머글래'가 나온다. 근데 왜 꼭 '먹을래'도 아니고 '머글래'라고 할까? 아무튼 진짜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