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에 대한 로망이 거의 없다. 경험상, 연애는 항상 스트레스를 동반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내게 사랑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연애에 대한 생각도 그러한데, 결혼은 어떨까?
‘그래도 대는 이어야 하니까, 충분히 즐기고 한 40살쯤 결혼해야겠다.’
철없게 들리는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어차피 사람의 수명도 점점 길어지는데 40살 넘어 결혼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40살 넘어 결혼해도 된다. 적어도 '생각'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생각이 아닌, 현실이 변했다.
살면서 계획대로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원래 계획보다 무려 10년이나 앞선, 만 30세의 나이에, 혼인신청서에 도장을 찍었다. 예전 같았으면 결혼 적령기이긴 하나, 요즘 시대가 어디 그때와 같던가. 혼인신고를 마치고 나와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 식을 올리지 않아 그런 것인지,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되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법적으로 부부가 된지 6개월, 이제는 신혼 생활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아침잠이 많은 와이프(아직도 와이프라는 호칭이 어색하다)를 깨우고 있자니, 결혼을 결심한 순간이 떠올랐다.
결혼 생각이 없는 내게, 혼기가 찬 여자친구는 부담스러웠다. 그녀는 가끔 농담처럼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엔 장난으로 넘겼지만, 몇 차례 반복되자 나는 입장을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안한데, 나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고, 그런 말 하는 거 많이 부담스러워."
나중에 들어보니 조금 상처받았다고. 여자친구는 그 뒤로 한동안은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시작했다. 나는 헤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봐도 못됐지만, 결혼 생각도 없이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 낫다고 판단했다.
사실 결혼 전까지 와이프에게 총 세 번의 이별 통보를 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르지만, 결국 맘속에 '어차피 헤어져야 할 사이'라는 인식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잘해보기보단 이별을 고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매번 붙잡았다.
마지막 세 번째 이별을 고하고 그 다음 날, 그녀는 기다리겠다며 동네로 찾아왔다. 나는 이번엔 꼭 헤어지겠다고 결심한 채,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집을 나섰다.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여자친구가 있을 만한 장소는 정해져 있었기에 그리로 갔다.
밤새 울어 빨갛게 붓고, 상처가 난 눈으로 서 있었다. 바로 그 모습을 보았을 때인 듯하다. 더 이상 헤어지지 말자고, 결혼하자고 결심했던 순간 말이다. 그때 조금 더 냉정했어야 했
신이 일부러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라도 한 듯이, 우린 취향과 성격 등 모든 것이 정반대이다. 살림을 합치고 한동안 서로가 힘들었다. '혹시 섣부른 선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점차 우리 생활은 안정을 찾아갔고 이제는 옆에서 곤히 자는 모습을 보면,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흔들리고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노력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수많은 고비가 찾아오겠지만, 그녀가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것처럼, 이제는 내가 튼튼한 버팀목이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