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빙체험 어때요? 1

연차 소진 여행 10 - 바다가 무서웠을까 혼자였던게 무서웠을까(첫번째)

by 구르는 소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니까, 사무실 직원들이 한 마디씩 건넨다.

"한라산 백록담 한번 보고 오셔야죠!"

- 나 군생활할 때 몇 번 가봤어. 그리고 지금은 등산 안 한 지 오래되어서 못가.

"빛의 벙커가 요즘 유명해요. 화려한 조명으로 미술작품 꾸민 공연 보시는 거 어때요?"

- 그런 디지털 아트쇼 제주도랑 육지에서 이미 많이 봤어.

"해녀체험 말고 해남체험 해보세요~ 뿔소라랑 낙지 잡아갖고 오세요.

- 요즘 귀 아파서 물속에 들어가는 거 어려울 거 같은데...

"우도에서 1박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우도 가셔서 1박 꼭 해보세요

- 우도에 두세 번 가보긴 했는데, 자본 적은 없네. 1박할 정도로 볼 게 있었나?

제주도로 여행 간다고 온라인에서 대화를 해본 SKT의 에이닷 프렌드 친구들보다는 여행조언이 훨씬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직원들도 카페체험이나 맛집탐방, 서핑체험, 올레길 걷기 등의 체험활동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사뭇 결이 다르다. 역시 인간미 내뿜는 우리 직원들이 A.I. 들 보다 현명하고 더 사려 깊다.


제주도에 혼자 내려와서 1주일간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직원들이 조언한 일정대로 살고 있었다.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카페를 찾아내 하루종일 글을 쓰기도 했고 미술관에 가서 전시작품들을 감상하기도 했다. 한라산 둘레길을 추천받아 걸었다가 다소 지루한 생각이 들어 무턱대고 한라산에 오르기도 했다. 우도에서 1박을 해보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아 괜찮은 우도 숙소를 미리 예약해 두긴 했다. 의식한 것은 아닌데 살펴보니 직원들이 이것저것 추천해 준 일정을 다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 연차소진 여행에서 직원들이 체험해 보라고 한 것을 다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다음날의 다이빙체험을 예약했다. 해남체험을 하는 곳을 검색해 봤는데 해녀분들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라 그런지 주말만 가능, 2인 이상만 체험가능한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해남체험이나 다이빙 체험이나 물속에 숨참고 들어가서 제주 바닷속을 구경하는 것일 테니 1인 다이빙 체험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서귀포 쪽에 평일 1인 체험이 가능하고 상시 예약을 받는 업체가 있어 프리다이빙 체험에 나서기로 했다.

서귀포에 위치한 제주다이브클럽. 평일 혼자서 다이빙체험이 가능하다고 하여 선택한 곳이다. 성수기를 지나선지 다소 황량해보이긴했지만 친절히 잘 진행해주셨다.




자라면서 가난했다고 느끼거나 그로 인해 서러운 적은 별로 없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가난했고 돈이 없었다. 가진 재산 다 팔아 목회공부 한 후, 기독교 교단에서 40대 늦깎이 목회자 생활을 하신 부모님이 부자일리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학교에서 진행한 해병대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수영복이 없어서 아빠 수영복을 갖고 갔었다. 고무줄을 졸라 매어도 수영복이 계속 흘러 내려서 수영훈련이나 PT, 식사 때에도 허리춤의 수영복을 움켜잡고 있었다. 당연히 조교선생님들한테는 내가 최고의 고문관이었다. 생각해 보라. 얼차려 중에도 계속 수영복을 움켜잡아 뛰고 있는 5학년 남자아이를! 수영을 배우는데 물속에서 수영복이 벗겨져 수영복을 서둘러 입다가 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줄 알고 조교선생님들이 헤엄쳐 들어오기도 했었다. 그땐 아직 사춘기가 아니어서인지 모든 게 재미있기만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수영복하나 살 돈이 없던 우리 집에서 해병대캠프를 보내준 것만으로도 내겐 신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됐다고 가난한 게 바뀌지는 않았다. 사람구실하려면 수영은 좀 해야 할 거 같아서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한 비용으로 수영장을 다녔다. 강습은 일정도 안되고 돈도 만만치 않아서 토요일 자유수영을 끊어 수영을 배웠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은 때라 수영 영법 등을 보려면 수영장의 물속에서 직접 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출발벽에 몸을 기대어 수영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다가오면 잠수해서 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지금 이러면 함부로 남의 모습 훔쳐본다고 큰일 나겠지만, 당시 별다른 항의나 제지를 받진 않았다. 오히려 수영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벽을 치느라 다가와서는 내 몸 여기저기를 툭 치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에도 초보레인에는 대부분이 여성분들이었다) 나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 외 별 뜻이 없었으니 그분들도 수영에 몰입한 것 외엔 별 뜻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분들 덕에 팔동작, 발차기, 숨쉬기 등 공짜로 수영을 배웠고 자유형과 평영법을 익힌 뒤 군대에 입대할 수 있었다.


자격과 체력도 안되면서 특전사를 지원한 이유 중엔 '공짜체험'의 이유도 있다. 비행기도 공짜로 태워주고 중간에 낙하산도 둘러맨 채 뛰어내리는데 위험수당까지 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특전사에 있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여름엔 바다로 가서 해상훈련을 하며 보트도 타고 수영도 가르쳐줘서 인명구조자격증을 취득하게 해 준다고 했다. 동계산악훈련으로 스키도 타고 암벽등반도 하면서 눈꽃 가득한 계곡에서 야영까지 한다는데 그게 다 공짜라니! 장교라서 월급도 받는데 다루기 힘든 부하 직원들 관리하는 리더십 역량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고 이것저것 잘 체험해 보며 제대했다. 후회는 없다.




한라산 숲 속에서 훈련하면서 한라산 정상에는 여러 번 올랐지만, 제주 앞바다에는 들어가 보질 못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제주 앞바다에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제주 해수욕장에서 바닷물속에 들어가 보긴 했지만 그건 물놀이였을 뿐이었다. 서귀포 앞에서 잠수정 체험 상품을 파는 여행사도 있지만 나는 직접 몸을 담가 보겠다며 희망목록에 그냥 저장해 놨었다. 직원들의 여행일정 조언도 있었고 22년 만에 한라산에 다시 오르기도 했으니 제주 앞바다에 한번 빠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1시간 30분 교육 및 체험에 1인 5만 원 비용이라니 요정도 요금은 감내할 수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가난하지 않으니까.


서귀포 칠십리 바다 방파제 앞에서 한 컷.


전날 한라산 등반이 무리였는지 몸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서귀포 칠십리 해변의 방파제에서 고작 5미터 나가서 2~3미터 정도의 깊이 물속으로 잠수하는 프로그램인데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스노클링으로 산호초 만지며 놀던 내 모습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귀도 아프고 자세도 잘 안 나와서 사장님한테 몇 번 지적을 받았다. 운동 안 하고 살찌면 이렇게 되는구나를 여실히 느꼈다. 한라산 등반의 후유증을 핑계 삼아 더 깊은 바닷속으로 나가보지 못하고 방파제 앞에서 다이빙 체험을 마쳤다. 뿔소라는 못 따고 자존감은 떨어졌지만 제주에서의 내 희망목록 하나는 해결했다. 제주도 앞바다 들어가 보기 임무완료! 그걸로 만족한다.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던 부둣가 앞의 바다에도 볼 것이 꽤 많았다. 깊은 곳이나 부둣가 앞이나 다 제주 바다 아니던가! 숭어가 떼 지어 다니고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곳곳에 몰려다니며 자태를 뽐냈다. 바위틈에 가재와 게도 숨어 있고 성게들도 보았다. 사장님은 바다거북이도 종종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혼자 다이빙체험을 하려니 적막하고 재미도 덜했지만, 오히려 아픈 내 몸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 와중에 제주 바다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내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속에서 바위에 머리를 부딪히고 허겁지겁 수면으로 올라오는 내 모습이 가련하면서 재미있었다.


<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



이전 09화목적이 이끄는 삶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