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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Nov 03. 2024

악당에 대처하는 법

강한 군대가 아니라 평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안보를 보장해 준다.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악당(빌런)은 있기 마련이다.


* 10대 중학생 때

- 반에서 잘못된 길을 걷는 불량학생들이 꼭 있다. 평소 흡연, 음주는 기본에 수업시간엔 음란서적을 보며 어제 도박한 얘기와 성적이탈한 얘기를 하면서 교실 바닥에 계속 침을 뱉는 녀석이 있었다. 하루는 자율학습시간에 뒤쪽에서 너무 시끄럽게 하길래 나도 모르게 갑자기 일어나 그 녀석을 몇 대 때려버렸다.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그랬나? 평소 조용하던 내가 갑자기 주먹질을 하니 녀석도 놀랬던지 금방 교실밖으로 도망가버렸다. 다음날 학교의 불량서클 아이들이 찾아와 따라오라며 밖으로 날 불러 내었다. 학교 뒷산으로 같이 올라가는데 안면이 있던 아이가 조용히 귓속말로 한마디 했다.

'덤비지 말고 조용히 몇 대 맞고만 가라. 그럼 금방 끝난다'

충고대로 조용히 몇 대 맞았다. 다행히 주먹들이 세진 않아서 아프진 않았다. 맞는 내가 아무 액션이 없으니 이 녀석들도 재미가 없었는지, 한두 번 주먹을 휘두르고선 다음부터 자기 멤버들 건들지 말라고 했다. 그 뒤로 몇 번 나를 찾아와 말로 위협하기는 했는데, 그게 다였다.


* 20대 초반 대학생 때

- 각자 살아온 배경이 있고 지역 등 환경이 다르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꼭 있다. 그들도 재수를 하고 입학한 내가 다소 불편했는지 말은 조심스럽게 건네는데 항상 오가는 대화엔 가시가 돋아 있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주먹질까지야 할 필요는 없었다. 같이 놀고 밥을 먹으며, 술을 먹고 친해졌다. 웃고 떠들지만 적당히 선을 긋고 서로 넘어가지 않으면 불편함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트면 친구가 됐고 아니다 싶으면 더 볼 필요가 없었다.


* 20대 후반 군생활 때

- 동기생들도, 상급자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고문관 빌런이 꼭 있다. 소위 계급장을 단 초급장교가 동년배의 부사관이나 나이 많은 상사급 부사관한테 경례를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4~5년 먼저 군생활을 시작한 동년배의 부사관들과 중대 내 최고참 부사관인 행정보급관은 새로 부임한 초급장교들한테 경례를 하지 않았다. 인사할 때 절대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간부교육에서 배운 덕에 아침에 만나 넙죽 고개 숙여 먼저 인사하는 건 장교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배치되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중대 내 제일 높은 부사관인 행정보급관이 생일을 맞았다. 적은 월급에 나이키 매장에 가서 체육복을 구매해 선물을 해줬다. 손글씨도 넣어줬다. 그리고 아침에 만나면 고개는 숙이지 않고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잘 쉬셨습니까? 행보관님!'이라고 먼저 인사를 했다. 눈도 같이 맞춰주면서 말이다. 소위 월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행정보급관이 모를 리 없었다. 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개선을 위한 나의 의지와 노력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행정보급관은 내가 아침에 인사하면 반갑게 경례로 받아 주었다. 먼저 경례를 해주기도 했다. 그 뒤론 부대 내 모든 부사관들이 만나면 경례로 인사해 줬다.




갑자기 왜 악당(빌런) 얘기를 할까?


우리나라는 같은 민족인 남과 북이 서로 나뉘어 산다. 총부리를 겨눠 참혹한 전쟁을 한 뒤, 서로가 서로를 빌런이라고 지칭하며 살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북한군이 파병된 것으로 밝혀지며 우리나라 및 관련 주변국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자기 존재 가치를 찾은 듯, 국가정보원은 전면에 나서 온갖 정보를 직접 밝히고 있고 공영방송의 9시 뉴스 헤드라인은 며칠째 북한군 관련 얘기만 나온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의 상황이 걱정스럽고 심각한 것은 사실일진대, 사실을 국민한테 전달하겠다는 건지,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건지, 전쟁을 기어이 해보겠다는 건지 위정자들의 그 숨은 속내가 심히 우려스럽다. 거기에 적극 부합하려는 듯 미사일과 전쟁무기, 군인들 모습을 계속 뉴스화면에 내보내는 일부 방송국의 저의도 의심스럽고.  


어느 시대 어디에서건 빌런은 항상 존재했다. 나한테 불편한 상대이면 그가 바로 악당(빌런)이다. 지금도 존재한다. 다른 건 계속 성장한, 변해온 나 자신이다. 다혈질이던 10대 중학생 때야 갑자기 폭주해 서로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는 어떨까? 서로 두들겨 맞고 피 흘리며 나중에 후회만 된다. 정신적 트라우마도 생길 수 있다. 서로 깐죽대봐야 좋을 게 없으니 상대방이 깐죽대면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참을 줄도 알고 무시하며 웃어넘길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어른이 된 20대는 함부로 싸우면 안 된다. 명예를 잃거나 법적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힘도 세지고 덩치도 커졌으니 자칫 잘못하다간 싸움에서 크게 다칠 수 있다.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의무적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중고등학교때와는 다르게 매일 볼 필요도 없고 싫으면 안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정 맘에 안 들면 내가 먼저 떠나버릴 수도 있으니 굳이 싸울 필요도 없다. 불편한 상대방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가끔 술도 마시고 밥도 먹으면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 보면 된다. 내가 원하는 바가 있으면 협상하거나 달래거나 하면서 목적을 이뤄도 된다. 마음먹기에 따라 친구가 되기도, 혹은 남남이 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 말, 30대부턴 눈치와 요령을 알아야 한다. 내가 힘이 있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 굳이 물리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다. 상대방도 어느 정도 체급을 갖춰 역량과 힘을 갖고 있다. 싸워봐야 이것저것 뒤치다꺼리할 일들만 귀찮고 그건 하수나 하는 일일 뿐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불편한 상대방을 쉽게 제압할 기술과 방법들을 체득할 수도 있다. 내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불편함에 맞닥뜨린 상대방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상대방의 기를 살려주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스스로 인식하게 해 주면 된다. 협상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른이 돼 가는 것이다.



과거의 정권에서 북한 최고권력자를 만나고, 경제협력을 하고, 위급한 상황이 오면 물자지원등을 해 준 게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전 정권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판문점을 넘어간 것은 강한 힘을 겪어 본 특전사 출신의 대통령이 평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이미 우리가 앞섰고 어른 역할을 해야 할 시기이니 그랬을 뿐이다. 북한을 따른다거나 그 체제를 동경해서가 아니다. 남한이 중학생이 아니기에 서로 깐죽거릴 필요도, 잘난 체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었다. 어른스럽게 먼저 눈 마주쳐주고 큰 소리로 인사해 줄 품격과 아량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이 어른답게 처신해야 주변에서 어른대접을 해주는 법이다.




지금의 남북한 상황을 보면 중학생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다. 어른스럽던 우리나라가 갑자기 중학생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모습이 올바른 것인지 성찰해 봤으면 좋겠다. 무력도발에는 무력으로 응징하고 전쟁예방은 강한 군대만이 가능하다는 인식엔 동의를 한다. 하지만 이건 하수의 정책이다. 상대방을 무력으로만 응징할 수도 없고 강한 군대만으로 국가의 안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불편한 상대방을 관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미 우리는 계속 체득하며 어른스럽게 성장해 왔다. 주변국들은 어른스럽게 행동하면서 자기들 잇속은 잘 챙기고 있다. 부디 성숙한 국민의식을 기반으로 혼란한 국제정세를 잘 헤쳐나가는 우리나라였으면 좋겠다. 어른이 중학생처럼 행동하면 자기 혼자 어른이라는 자만심에 빠지고 주변인들은 나중에 뒤돌아서 흉을 보는 법이다. 앞에서는 잘한다 잘한다 박수를 쳐주고...


전쟁얘기만 나오면 군대에 자식 보낸 부모들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강한 군대가 안보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평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강한 군대를 만들고 안보를 보장해 주는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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