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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닿 Jan 02. 2022

엄마의 손발톱

또다시, 스테로이드

 스테로이드에 호되게 당하고, 모녀는 가끔 '미쳤을 때'를 회상한다. 물론 그때는 조증일 때와 우울증일 때 둘 다 포함된 것이다. 모든 것이 좋아져서 엄마는 스테로이드를 먹지 않은 날이 이어졌다. 스테로이드에 해방된 엄마는 함박웃음을 마음껏 내뿜고 다녔다. 매일 한 봉투씩 타 오던 약봉지가 후루룩 줄어들어 그냥 가방 안에 넣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의 손톱이 들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손톱을 통으로 뽑는다던데. 그런 모습이었을까. 흰색에 가까운 연한 선분홍빛 손톱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덜렁 들려서는 엄마를 매일 고통스럽게 했다.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걸려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엄마는 고통스럽게 "아야!" 소리쳤다. 아무도 그 고통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손으로 하는 것을 대부분 할 수 없어해 우울한 상태로 돌아왔다. 뭐만 하면 "이놈의 손톱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를 중얼거린다. 새로운 입버릇이다. 나는 엄마가 부탁하는 대로 뚜껑을 따고, 병 라벨을 제거하고, 스티커를 제거한다. 겨울이니 요즘에는 귤껍질을 까준다.


 엄마의 열 손톱 모두 빠졌고, 손톱이 다 빠지니 이제는 내 차례라는 듯 발톱이 빠지고 있다. 모녀는 '손톱이 새로 자라나는 것이 맞을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단단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말랑한 살들이, 손끝에는 갈라져서 피가, 뜯어져 정리되지 않은 손톱의 끄트머리가 때로는 고통이 되어 엄마는 또 "아야!" 소리쳤다. 갈라져서 피가 나니 바셀린을 바르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 말에 매일 손끝을 촉촉하게 하며 피나지 않게 보듬는다. 거스러미는 다가와 보이지 않으니 좀 잘라달라고 부탁해 잘라줬다. 생살과 붙어있는 2mm 정도 되는 미세 손톱을 조심스럽게 자르고 나면 긴장감이 훅 떨어진다.




 엄마는 숙주 반응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엥. 그렇다면?", "스테로이드 두 알 먹으란다."하고 다시 한 보따리가 된 약봉투를 가리킨다. 먹어도 손톱이 원래 상태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듣고 나니 나는 엄마의 손을 볼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혼자가 되면 조용히 속으로 빌게 된다. 가족을 공포로 떨게 만들었던 스테로이드지만. 부디 지금은 약이 잘 들어 엄마의 손발톱이 제대로 나게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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