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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닿 Jan 24. 2022

매운맛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역시나 숙주 반응

 한국인이라면 매운맛이 빠지면 섭하다. 하다 못해 고기를 먹을 때도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후추가 들어간다. 쌈장에도 매운맛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 엄마는 매운맛의 ㅁ도 못 먹게 되었다.

 알게 된 시기는 엄마의 손톱이 빠지게 되었을 때와 엇비슷하다. 하지만 손톱은 천천히 이루어졌고 미각은 한순간의 일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김치찌개에 밥을 먹었고, 빨간색이 난무하는 자극적인 반찬과 함께 밥을 먹었다.


 다섯 살 된 나의 조카가 있는데 매운 것을 입에도 못 댄다. 어느 날에는 나의 최애 과자인 매운 새우깡을 훔쳐 먹고 "매. 매." 이러면서 혀를 쭉 내밀고 손부채질 하기 바빠했다. 못된 어른인 나는 "그러게 누가 훔쳐 먹으래?" 하며 낄낄대기 바빴고 더 큰 어른은 아이에게 우유 한 컵을 쥐어주고 진정시켰다.

 그게 엄마에게 해당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아무런 생각 없이 과자(역시 매운 새우깡)를 먹고 있었는데 엄마가 와서 하나 먹고서 손부채질하는 것을 봤다. 나도 모르게 눈이 똥그래져서는 "매워?"하고 물었고 엄마는 고개를 연 씬 끄덕이며 우유를 찾았다. 그날 이후로 장을 볼 때 항상 우유 2개를 사 왔다. 모두 매운 것을 못 견디는 엄마를 위한 보호구였다.

 라면이 먹고 싶다길래 고심하여 제일 안 매운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골랐는데 후추의 매운맛 때문에 먹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 띠용이었다.

 조카와 함께 있을 때 무언가를 먹기 전 엄마가 먼저 먹고 매우면 못 먹는... 조카 매운맛 탐지기 역할을 하는 웃픈 상황도 생겼다.


 경상도인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고춧가루를 뿌리지 않으면 반찬이 반찬이 아니라는 식의... 나로서는 상당히 어이없는 지론을 펼치는 엄마는 본인 손으로 한 반찬을 거의 손에도 못 대기 시작하면서 맵지 않은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춧가루 하나 없이 오로지 간장과 소금으로만 간하여 허여멀건한 반찬이 밥상 위에 올라왔다.

 

 검사를 위해 서울에 갔다 온 같은 날, 이전 엄마의 손발톱(https://brunch.co.kr/@oldsea/18) 글에서 마찬가지로 숙주 반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스테로이드 2알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벌써 3주가 지났다. 엄마의 손톱은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았다. 발톱도 어제 하나 빠졌다며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미각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김치도 먹을 수 있다. 물론, 많이 먹으려면 한 번 씻어서 먹어야 하지만 입에도 못 대던 과거와 달리 먹을 수 있다는 상황이 놀랍기만 하다. 3일 전에 손수 김치찌개를 한 들통으로 끓여 열심히 같이 먹고 있다.

 치킨의 달짝지근하면서 매운 양념이 아닌 염지를 하면서 생긴 매운맛으로도 못 먹었는데 이제는 양념 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염지까지는 버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일이 이해 못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곁에 있는 나로서는 약과 생명의 위대함을 보고 있다. 그리고 암이라는 것이 새삼 무섭기도 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뒤돌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일기가 간헐적이라도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엄마가 오랫동안 살아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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