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닿 Feb 11. 2022

드디어 1년

 오래도록 기다렸다. 드디어 엄마에게 1년 후에 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하겠다. 정말 오래도록 기다렸다. 14년부터 시작하여 22년. 유방부터 림프종, 폐까지 전이가 되었던 엄마에게 완치 판정이 떨어지고 3개월, 6개월 그리고 드디어 1년.

 수술하지 않았는데도 완치가 된 엄마의 생명력과 의지에 경의와 존경을, 매일의 감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굴을 마주하면 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다.

우울증과 공황 상태였을 때 엄마의 곁에 있어 준 것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라고 말하지만, 그때는 도망치고 싶었고 원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두 가지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암 환자라는 사실을 들었던 날과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했던 엄마의 이야기.


 엄마가 암 걸렸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 아무렇지 않게 썼던 ‘암 걸리겠다.’라는 말을 하는 나에게 욱해서 말했다.

 “진짜 암 걸린 사람이 들으면 어떤 기분이겠니. 니 엄마 암 걸렸다.”

 당연히 나는 그 이후에 그런 말은 쓰지 않았다. 욕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상황이 맹렬한 칼이 되어 큰 상흔을 남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욕을 쓴다는 점에서 불행인지, 상흔이 큰 트라우마를 안 남겨서 다행인지.


 엄마는 자기관리를 정말로 철저하게 했다. 암세포가 좋아하는 탄수화물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밥도 현미밥으로 먹었다. 밥솥의 한편에 따로 밥을 지어 먹었다. 우리도 잡곡밥을 먹긴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쌀이 거의 진짜 현미밥을 먹었다.

 아침에는 몇 가지 음식을 쪄서 먹는 식단을 했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서 먹는 모습이 대단하게 보였다. 엄마는 살려고 먹는다고 말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암 말기라는 사실은 알지만 죽음이 멀리서 보였다. 엄마가 죽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엄마를 믿었다. 완치로 증명했다.


 항암을 정말 오래 했다. 항암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때는 그거 말고 그거 맞았지. 하면서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몇 가지 안 맞은 것 같은데 신약, 호르몬, 높은 보험금이 이해되는 비급여 고가의 항암제 등등 내가 몰랐던 일들이 막 쏟아져나온다. 갑자기 들이닥친 새로운 사실에 허덕이고 있는데 불현듯 직접 체험했을 엄마를 생각하자니 착잡했다. 항암을 하는 사람은 살기 위해 수많은 약을 맞고 먹는다. 이 약이 안 맞으면 저 약, 저 약이 안 맞으면 그 약.

 암 자체가 돌연변이 유전자로 인해 세포가 변이된 것이다. 그래서 유전자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맞는 약이 제각각일 수밖에.

EBS 위대한수업 '암'을 들었을 때 했던 필기


 나는 때로는 초민감자였다가 때로는 둔감한데, 엄마는 대체로 초민감자다. 병원에 있던 시절에 잠자리가 불편해서 선잠을 자고, 항암제 때문에 목이 타서 계속 물을 먹고 화장실을 가던 버릇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쳐 지금도 선잠을 잔다.

 근데 집에 있어서 이만큼 잔다고 하니 말해 뭐해.


 완치 판정도 벌써 몇년 전이다. 엄마에게 바라는 것이 정말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일 바라는 것은 하나다. 엄마가 한 번도 안 깨고 푹 잤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운맛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