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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Jun 08. 2022

나는 참 예민한 사람이다.

농담과 용서에 대하여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크게 드러나지 않는 신체적 예민함과 더불어 감성적 예민함을 갖고 살아왔다.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 다 굉장히 예민했다. 그에 더해서 감성적인 예민함도 비슷하게 높았던 것 같다. 그건 지금까지도 그렇다.


신체적인 예민함은 크면서 어느 정도 덜해지기도 하고 컨트롤이 가능한 정도로 들어서면서 나아졌는데 문제는 감성적 예민성인 듯하다.


나의 문제는 딱 집어 이야기하자면 “사회적 언어”를 잘 구사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많이 부족하다.


초등학교 1학년 통지표에 나에 대한 선생님의 평을 보면 참 놀랍다. “친구들을 용서하지 못한다”라고 쓰여 있고 부모님의 기억을 통해서는 내가 자주 친구들을 째려보곤

했다고 한다. 아마도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이 내 신경을 거슬렸을 테고 나는 그 불편한 감정을 소화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듯하다.


유년시절,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크고 작은 관계의 어려움들이 많았다. 그때는 워낙 모두들 반항적인 시기이고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그렇겠지만 나는 참 폭풍 같은 내면의 시기를 보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보면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고받아주는 마음이 아주 넓은 친구들만을 편하게 생각하고 사귀었고, 친해지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상황은 피하곤 했다. 그로 인해 나는 타고난 성품이 온화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일을 참 잘한다.


가족 안에서의 나는 어땠는지 돌아보면 참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하다.


초등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즈음 나는 연년생인 동생과 늦게 귀가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친구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우리가 잠 들고나서 부모님은 내 여동생만을 데리고 집에 가서 재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동생만 데리고 간 부모님을 생각하며 참 상실감이 컸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나만 친구 집에 놓고 간 걸까 혼자 상상하며 불안함을 가득 안고 부모님께 이유를 물어보았는데, 참 가벼운 이유였다. 동생이 나보다 가벼워서 동생만 데리고 집에 갔다는 것.


(어릴 때부터 나는 통통한 편이었고 동생은 마른 편이어서 항상 주위에서나 가정에서나 비교가 되곤 했다. 나에 대해서 건강하게 잘 먹는다고 칭찬받았던 기억은 없던 것 같고, 어른들의 짓궂은 농담 중에는 “동생 밥 다 뺏어먹었나? 왜 동생은 이렇게 삐쩍 말랐어?”도 종종 있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정상체중이었을 뿐이다.)


그런 이유가 사실이 아닐 거라고 몇 번을 부모님께 간절하게 물어본 결과 엄마는 내게 귀찮아하는 한숨과 함께 “네가 너무 곤히 자서 동생만 데리고 왔어”라고 했다.

친구네 집과 당시 우리 집은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동이었다. 걸어서 몇 걸음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나는 엄마가 마지막에 한숨과 함께 한 말은 변명이며 거짓이고, 동생 때문에 내가 친구 집에 버려졌다는 그리고 언제라도 동생 때문에 내가 버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 트라우마는 나의 20대 시절까지 쫓아와 괴롭혔고, 결국 부모님의 진심 어린 공감과 사과로 그 사건에 대해서는 많이 회복이 되었다.


부모님은 농담 어린 말에 숨겨진 속뜻을 내가 이해하기를 원한다. 통통한 몸으로 살며 (정상체중) 외모에 한창 예민한 시절 아빠는 나를 “땡이”라고 부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땡이는 뚱땡이의 땡이다. 나를 뚱땡이라고 부르는 걸 애정표현이라면서 그런 애정표현에 상처받은 내가 이상한 거라고 했다.


내 부모님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매우 서툴다.


어릴 적 예쁨 받고 싶어서 나 예뻐? 하고 물어보면 “객관적으로 이쁜 편은 아니지. 귀여운 편이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낙담한 내가 “그냥 딸이니까 이쁘다고 말해주면 안 돼?”라고 물었을 때는 “이쁜 걸 이쁘다고 하지, 넌 어떻게 거짓말을 하라고 하니?”라고 대답했고 난 입을 꾹 닫았다.


집에서도 그저 딸이기에 이쁨을 받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열등감은 날 오랫동안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없는 형편에서도 날 위해 새 책상, 책들, 학원, 대학교 등록금 등등 많은 지원을 해주셨는데 나는 온 맘으로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식 안 굶기고 학교 보내고 재울 공간이 있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사는 그 시절 부모님에게 나는 관심에 목말랐고 애정에 목말랐다.


반대로 나에 밀려 대부분을 물려 쓰고 입고 학원도 못 간 내 동생에게는 물질적 결핍이 있다.


내가 참 아쉬운 부분은..

동생을 참 많이도 미워했다. 이유 없이 미워하고 죽일 듯 싸우고 저주하고…

지금은 잘 지내지만, 부모님이 내리사랑으로 둘째라는 이유로 얼굴이 넙적한 나와 다르게 계란형이라는 이유로 이뻐했던 동생이 참 미웠다. 나는 애원을 해도 이쁘단 소리를 못 들었는데 동생은 노력 없이도 그저 이쁘다고 하더라.


아이를 낳고 나서 부모님이 그래도 날 사랑했구나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내 품의 꼬물거리는 이렇게 이쁜 아이를 보며 내 부모님은 왜 나에게 이쁘단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도 참 컸다. 나 이쁘다고 한마디만 했으면 이렇게 괴롭게 안 살았을 텐데 하고 생각도 하고 말이다.


다 크고 나서 진심을 물어보면 그때와는 또 다르더라.

어떻게 내가 안 이쁠 수 있겠냐고,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하고 키운 딸인데 어떻게 부모 마음을 모르냐고 되물으신다.

내 기억 속 부모님은 왜 그리 무섭고 어려운 부모님이었는지 모르고 원망해 온 세월이 야속하다.


최근 들어 한 가지 깨달은 점은 나는 그동안 부모님에 대해 굉장히 잘못 생각하고 오해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 가족은 소통이라는 걸 안 하고 살았다. 속 이야기 없이 그냥 밥 같이 먹고 자고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이렇게 사는 가정이 수두룩 할 것이다.


지나고 나니 나의 슬픔과 아픔이 쓸데없는 오해와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고, 진작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세월이 참 아쉬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말로 정확히 알려주지 않으면 생각조차 못하는 모자란 사람인 걸…

나도 그동안 내 채워지지 않은 마음 때문에 부모님께 많은 상처를 드렸고.. 부모님께로부터 받은 많은 상처 또한 용서하기로 했다. 부모님은 나를 용서할 것이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랑과 용서뿐이더라..


결론은…!

이렇게라도 깨닫게 해 주신 것도 하나님 은혜다.

내 나이 서른.

돌이켜서 부모님께 사랑을 전하는 게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살아계시기에 제대로 사랑해볼까 한다.

부디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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