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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Jun 08. 2022

나의 예민함은 아직도 진행중인가보다.

여러 강박과 유전에 대하여

이전 글에 썼듯이 나는 오감이 참 예민한 사람이다.


나의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로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과 보는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 옷감을 만지고 그 옷감의 촉감과 무게, 비침의 정도, 흐르는 느낌까지 많은 감각들을 동원해야 하는 직업이다.


시각과 촉각뿐만 아니라 후각과 미각도 발달해서 예민하게 감각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나의 감각은 여러 가지로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


내가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마 일곱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마 나이가 들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디자이너를 하지 않을까 상상할 정도로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업이자 나의 열정이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주위에서 이야기한다. 내가 돈 많은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지능이 높은 편도 딱히 아니지만, 내 꿈을 일찌감치 찾았다는 면에서는 나는 운이 좋다고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너무나 좋아했다. 만들기도 좋아했고 종이접기도 좋아했던 평범한 아이였지만 나의 그림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보통 공주님을 그리곤 했는데 내 그림에서 내가 제일 많이 시간을 써서 그리는 부분은 공주님의 옷이었다. 얼굴을 예쁘고 마음에 들게 그려도 옷에서 망치면 화가 났다. 문득 나는 옷을 좋아하는구나, 옷을 그리고 싶구나, 옷을 만들면 어떤 기분일까, 옷을 만지는 촉감은 어떠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옷에 대한 나의 관심을 깨닫게 되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품게 되었다.


그림 그리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던 나는 유치원 때를 기억한다. 나는 내 물건이 망가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끝부분을 돌리면 심이 나오고 들어가는 색연필이 12개 들어있는 케이스를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무지개 색깔이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친구가 빌려달라고 하거나 동생이 빌려달라고 할 때 매우 안절부절못했던 내 마음이 기억이 난다.


내 물건을 소중히 사용하고 아껴 쓰는 건 아주 장려할 일이지만 이것이 강박의 시작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강박은 결핍으로부터 시작하기도 하지만 내 경우는 애정결핍과 더불어 타고난 예민성이 불러온 듯했다.


강박은 별것 아닌 것부터 시작되었다.


교과서나 문제집을 풀고 지우개로 지울 때 마찰로 인해 가끔 종이가 접히거나 찢어지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종이를 조심히 잡고 지우개로 지우곤 했는데, 간혹 나의 부주의로 종이가 접히거나 찢어지면 갑자기 큰 분노가 일어나 통곡을 하며 울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나는 8살부터 안경을 써왔다.

안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안경테가 나의 시각에서 어지간히 거슬리는 게 아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안경테의 어느 한 부분을 정해서 5초에 한 번씩 그것을 바라보아야 마음이 안정되기도 하고 안경을 어떤 리듬에 맞춰 꼭 손가락으로 만져줘야 하고 등등 안경과 관련한 여러 강박을 돌아가면서 체험해보았다.

내가 틱 장애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내 힘으로 멈춰보려 해도 나의 눈동자는 안경테를 바라보려 돌아갔다.

안경을 사용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경 강박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강박은 없어졌고 몇 가지만 소소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20살이 넘어서 생겼던 강박 한 가지는 밤 12시 전에 당일의 일기를 다 쓰지 않으면 화가 나고 나 자신이 미워지는 것이었다. 일기라는 게 쓰다가도 12시가 넘을 수도 있고 새벽 감성으로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12시가 넘어간 뒤 일기를 마치거나 쓰게 되면 그날 일기의 정당성을 의심하며 울면서 일기 쓰기를 중단하곤 했다. 그래서 이제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이렇게 타자를 치며 새벽에도 글을 쓴다. 일기장에 날짜를 내 손으로 적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 글쓰기가 나는 참 자유롭기도 하다.


나의 심한 강박 중 하나는 손톱 주위 살과 거스르미를 이로 물어뜯기였다. 물어뜯기를 넘어서 커터칼로 도려내기에도 아주 집중했다. 보기 흉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물어뜯고 부모님이 혼을 낼 때는 숨어서 뜯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숨어서 발가락 살까지  뜯었으니 위생적으로 매우 걱정되는 일이었다. 열 손가락을 다 뜯고 나서 피가 흐르고 딱쟁이가 덕지덕지 생기고 더 이상 뜯을 곳이 없을 경우에는 내가 콜럼버스가 된 양 불모지인 두번째 손가락 첫 마디의 여린 살을 찾아 내가 직접 굳은 살을 만들어보겠다고 피를 내며 뜯기 시작했다. 그곳이 정말 굳은살화 되었고 연필 잡는 세 번째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듯이 나의 두 번째 손가락 손톱 밑 첫째 마디 옆은 아직까지 굳은살로 딱딱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내 손을 밖에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이 되고 나서야 나는 뜯는 손가락 개수를 하나씩 줄여가며 지금은 거의 티 나지 않게 엄지손톱 코너 한 곳의 살을 손톱으로 꾹꾹 누르며 자극한다. 엄밀히 말하면 통증인데 이 행위가 내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렇기에 가끔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긴장되는 순간에 놓일 때는 나도 모르게 엄지손톱의 코너 살을 꾹꾹 누른다.


나의 사랑하는 딸이 돌이 되었을 무렵부터 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양 엄지손가락 살들을 손톱으로 긁고 뜯어내기 시작했다. 저번에 어떤 영상에서 오은영 선생님은 그러셨다. 촉각이 예민한 아이들은 거슬리는 것들을 없애서 평평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떨어질 딱쟁이도 다 떼어버린다고 한다. 내 사랑하는 딸이 나의 강박은 제발 따라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 앞에서는 절대 손가락을 뜯거나 그러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데도 아이는 이미 손가락을 뜯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나의 강박은 이불이다.


이불 강박이 생긴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강박이라는 게 습관에서 시작하는데 나는 일부러 깔끔하게 정리정돈된 호텔식 침구 형태를 표방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이 나의 대학 자취 시절이었으니 가장 최근에 시작된 강박이다. 지금까지 10년을 습관처럼 강박을 이어오고 있으니 이게 좋은 건지 의심이 든다.


나의 이불 강박은 굉장히 단순하다. 호텔 침대 이불처럼 홀겹의 덮는 이불 하나와 커버 씌운 솜이불이 한 세트로 나의 몸을 덮는데 이 이불들이 꼭짓점을 맞춰 평평히 당겨 있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꼭 각을 맞춰서 호텔방 처음 들어갔을 때의 침대 이불 모양처럼 주름 없이 단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습관을 강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불 안에 들어가서 곤히 자다가도 나는 왜인지 모르지만 촉각이 모두 몰려있는 듯한 나의 발등으로 이불 안을 훑는다. 그리고 안쪽에 이불이 주름져있거나 접혀있는 경우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굳이 각을 맞춰서 당겨서 정리한 후 다시 들어가 눕는다. 너무나 피곤해서 자다 깼을 때 그냥 무시하고 자고 싶은데 나는 매번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잔다. 지금은 손이 좀 덜 가게끔 이불 고정용 핀을 사서 양끝과 중간지점 총 6군데에 고정하고 난 뒤 밤에 깨는 일이 많이 줄었다.


만 세 살 나의 딸은 얼마 전부터 이불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기 때부터 애착 이불, 애착 인형, 장난감 이런 것들이 하나 없이 무난하게 큰 아이여서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나를 보며 학습이 된 모양인지 자신의 침대에 누워 이불을 완벽하게 네 모서리가 펼쳐지게끔 덮으려 노력하며 짜증도 내고 마음대로 안될 때는 나를 불러 이불을 펼치게 한다. 내가 안타까워서 한 모서리를 흐트러뜨리기라도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통곡을 한다. 다행히도 매일 그러지 않고 아주 가끔 생각날 때만 그러니 시간이 지나며 완화되기를 바란다.


습관과 강박을 구별하기 어렵지 않나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결국 나를 힘들게 하고 그 행위를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게 강박이 아닐까..?


강박 행위를 함으로써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과연 정말 궁극적으로 편안한 것일까? 그 행위가 없어도 편안한 상태가 진정한 편안함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여러 강박을 체험하고 졸업하고 또 새로운 강박을 맞이하고 나의 인생은 강박의 연속인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강박은 서너 가지로 줄었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습관을 강박으로 만드는 것을 내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것.. 그 사실들을 알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내 사랑하는 아이에게도 이제는 강박에 대한 열린 마음과 이해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무언가 배운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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