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생트
‘압생트’ 어딘가 귀여운 요정 이름 같은 이름의 이 리큐르는 오묘한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다.
스타아니스와 쑥의 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릴만한 리큐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극호인 술
놀러 갔었던 칵테일 바에서 취향의 향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타아니스를 좋아한다는 내 말에 바텐더님이 준비해 주셨다.
스타아니스가 좋아서 직접 빻아 가루로 만들고 그걸로 디저트를 만들어 본 적도 있는 나에게는, 마셔보기 전부터 이미 합격이었던 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시는 방법도 따로 있다는 압생트.
압생트를 잔에 절반 정도 채우고, 잎사귀 모양의 구멍 난 스푼과 각설탕을 올린다. 그리고 그 위로 조르르 물을 부으면 투명한 녹색 빛의 압생트가 우윳빛의 ‘압생티아나’로 변한다.
투명한 술에 투명한 물을 부었는데 뿌옇게 되다니! (술 취한 상태로 보면 소리 지를 듯)
그 원리는 압생트 속의 ‘에탄올에는 녹지만 물에는 녹지 않는, 아네톨’ 성분 때문이다.
압생트에 물이 섞이면서 도수가 낮아지고, 섞여 있던 아네톨이 풀려나와 탁해지는 현상인 것이다.
아니스나 팔각이 들어간 다른 술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우조 현상)
아무튼 이렇게 마시면 보는 재미에 더해 물에 희석되어 은은해진 압생트를 달달하게 즐길 수 있다.
압생트는 알코올에 약쑥의 잎과 줄기, 아니스(anise), 회향(fennel)과 같은 성분을 넣어 불린 뒤 방향 성분이 녹아 있는 이 알코올을 다시 증류해서 만든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 특히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이 술은 ‘녹색 요정’이라는 별명과 함께 어두운 일화들로 ‘녹색 악마’라는 별명 또한 갖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술을 마신 뒤 환각상태에 빠져 귀를 잘랐다는 일화가 가장 유명하다.
쓴 쑥에 들어있는 ‘투존 thujone’ 성분이 환각에 빠지게 만든다며 비난을 받았는데 실제로 다량 음용기 생명에 지장을 줄 수는 있지만, 환각을 일으키는 물질은 아니라고.
또 프랑스의 어느 농부가 압생트를 마시고 가족과 함께 동반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되어 결국 ‘압생티즘(환각과 분노를 일으키는 압생트의 부작용)’이라는 단어도 생겼다.
(실제로 이 농부는 압생트(고작) 한 잔에 와인을 여러 병 마셨다고.)
(실제로 이 술이 프랑스에서 유행한 시초를 찾자면 1890년대 와인의 부족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악명 높은 진드기 ‘필록세라’의 영향으로 포도나무가 죽어갔고, 그만큼 와인의 생산량이 줄고 값이 치솟아, 그 대체품으로 사람들이 맥주와 스피릿, 특히 압생트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었다.)
어느 술이나 그렇듯 과도한 음주는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
당시 사회에 음주를 절제하자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고, 불운하게도 압생트는 그 타깃이 된 것이다.
불쌍한 압생트.
그럼에도 예술가들을 유혹하는 듯한 다양한 이야기와 환각효과를 일으킬 것 같은 위험한 매력이 있는 술이다. 만일 흔한 칵테일이 질렸다면, 칵테일 바에 가서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도수도 기본 55%부터 80%까지 다양하다니 나름의 베리에이션을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극호! 안주는 소금 알갱이가 붙어있는 슴슴한 프레츨이면 충분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