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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ul 29. 2016

헬로 뉴욕

좋은 시작이다

서부여행의 '상처'를 치유하며 평온한 시골생활을 즐긴 지 열흘 남짓, 우리는 다시 떠날 날을 맞이했다. 뉴욕을 여행하기로 한 5박 6일의 일정 동안 숙소를 모두 뉴욕에서 해결하기에는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뉴저지의 지인의 집에서 사흘 밤을 신세지기로 한지라 감사의 뜻을 담은 골프공 선물도 준비해서 차에 실었다. 뉴저지에서 뉴욕은 한 시간 넘게 달리는 거리지만 그걸 감수할 정도로 뉴욕의 호텔은 비싸다. 싼 곳은 빈대와 치안을 믿을 수가 없고. ㅎㅎ
 
남편은 지인들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나는지 나는 듯이 달렸다. 처음 필라델피아 여행을 할 때엔 긴장 때문에 녹초가 되더니, 이번에 뉴저지까지 달리는 12시간은 전혀 피곤한 기색 없이 마구 달렸다. 중간에 100마일 정도는 내가 운전했지만, 어쨌든 새벽에 출발한 지 13시간 만에 그 집에 도착하는 데에 무난히! 성공했다. 우린 뉴저지에 있는 H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내가 주문한 육개장이 완전 맛났음) 남편은 우리를 숙소에 두고 숙소를 빌려준 은인을 포함한 모임에 오징어와 말린 안주거리를 들고 가서 신나게 만남을 가졌다.
 
아침에 일어나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 날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바로 러시티켓을 득템하자! 였는데, 러시티켓이 뭔가 하면...
사실 뮤지컬을 무쟈게 좋아하지만 이번 뉴욕 여행에서 차마 세 식구가 뮤지컬을 관람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게, 티켓 값이 가볍게 기본 100불이 넘는다. 한국에서 항상 뮤지컬 표값이 많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사람들의 경제 수준에 맞는 비쌈이었나 보다. 이쪽은 정말 비쌈. ㅠ_ㅠ 그냥 아쉽지만 넘어가야지, 어차피 한국에서 내한공연 그런 걸로 나는 잘 찾아 보니까. 남편과 아들은 뮤지컬에 관심도 없고. 그러던 차 아들이 꿀 같은 정보를 캐온 것이다. 뮤지컬 티켓을 싸게 구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로터리(복권)'이고 하나는 '러시티켓'이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로터리는 일정 금액의 돈을 내고 뽑기를 해서 표를 구하는 방식이고, 러시티켓은 잔여 좌석을 공연 당일 아침 일찍 선착순으로 헐값 처리하는 방식이다. http://www.nytix.com/Links/Broadway/lotteryschedule.html 이 페이지를 보면 해당 공연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레미즈에 미친 나와는 달리 남편은 화려한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싶어했고, 아들은 무념무상했는데 내게는 다행으로 우리가 도전하기로 한 러시 티켓 목록에는 레미즈만 있었다. 오, 땡큐. 극장이 문 열기 한 시간 전에 와야 확률이 올라간다고 하길래 아침 9시에 맞춰서 맨하튼에 입성했다. 교통은 지옥 같았고, 뉴저지에서 이지패스(미국판 하이패스)를 달지 않고 현금 톨 지불을 하며 왔더니 통행료만 21.5불이 들었다. 한화 환산하면... 안산에서 서울 오는데 통행료를 2만6천원 정도 들인 거다. 꺄하핫!! 남편이 계약한 주차장에 차를 대러 간 동안 아들과 먼저 줄을 섰는데, 줄을 선 사람들은 딱 봐도 학생 같은 사람들. 우리 앞에는 약 6명 정도가 있었는데 다들 아주 작정하고 시간을 죽일 책 같은 걸 들고 왔다. 우리가 기다리는 레미즈 상연 극장인 임페리얼 극장 맞은편에는 퍼플 하트를 상연하고 있었고, 거기에도 러시 티켓 줄이 있어서 왠지 동지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앞에 선 사람들보다 우리 뒤에 선 사람들이 많았다. 두근거리며 10시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인당 37불이라는 가격에 티켓 구입에 성공했다. 가장 싼 티켓이 59불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당연히 남는 장사.


밤 8시에 브로드웨이 레미즈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 날 엄마는 제일 신이 났다. 아메리칸 뮤지엄 오브 내추럴 히스토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듯. 뉴욕에서는 악명 높은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했고, 아예 5일 동안 뽕을 뽑을 7일 자유권을 구입했다. 내 카드로 사다가 세 장째에서 갑자기 카드 승인이 안 났는데, 마그네틱이 고장났나 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인당 32불) 지하철은 소문대로 화장실도 없고/플랫폼에서는 냉방 안 되며/겁나 낡고 지저분했다. 하지만 배차 간격은 잦았고(워싱턴과 비교해서 그 점 매우 마음에 들었음) 전철 안이 그렇게 붐비지 않고 차내에서는 냉방을 잘해주더라. 총 든 사람도 못 만났다. 나갈 때에는 개찰구를 지나지 않고 그냥 문을 밀고 나가는데, 그 얘기인즉슨 뉴욕 지하철은 거리에 따른 할증요금이 없다는 뜻인가 보다. 하긴, 한 번 탈 때 한국돈으로 약 3천원이 넘는다. AMNH는 지하철에서 바로 통하는 구조였는데, 이른 시간부터 관람객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미리 구입했던 시티패스를 이곳에서 받고 관람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시티패스를 써본 적이 없는데 이곳이 처음. 뉴욕은 좀 오래 머물기 때문에 확실히 절약이 됐지만 진짜 메뚜기처럼 뛰어다닐 의지와 체력이 없다면 면밀하게 각 포인트의 입장료를 계산하고 비교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시아 전시실에서 본 장승에 잘못 그린 한자


이 박물관은 정말이지 엄청 교육적으로 잘 꾸며져 있는데,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대형 박제 전시실이었고(게다가 거의 다 기증품;;) 또 하나는 최신상 공룡이라 이름조차 생소한 티타노사우르스를 전시한 전시실이었다. 이 공룡의 뼈를 파낸 지는 한 3년 됐고 이 뼈 복제 모형을 전시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라고 한다. http://www.amnh.org/exhibitions/the-titanosaur 아직도 공룡뼈는 계속 파내는 중이니까 앞으로도 새로운 공룡을 볼 수가 있겠다. 공룡에 대한 학설도 계속 수정되고 있어 지금은 '깃털' 입은 공룡이 거의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들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과거 공덕 아들은 그것은 정말로 싫고 믿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래, 사람은 믿고 싶은 게 따로 있는 법이야.

시티패스에 특별전시 하나를 볼 권리가 들어 있었는데 3D로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한 영화를 봤다. 진짜 제대로 자고 나왔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공룡 이름 맞히기 놀이를 실컷 하고 나오니 살짝 비가 오락가락했다. 배가 많이 고파서 그 근처에 있는 쉑쉑버거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아틀란타에서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 쉑쉑이 첫경험. 아틀란타에서 쉑쉑을 경험한 S는 버거는 맛있지만 비싸며, 프라이와 쉐이크는 맥도날드와 별로 다르지 아니하니 안 시켜도 된다고 했는데 남편은 또 굳이! 자기 입으로 먹어봐야 한다며 주문을 원했다.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과연 앉아서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지하의 테이블도 굉장히 적고 좁음) 의외로 사람들이 안에서 먹고 싶어하지 않는지, 조금 기다리니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소문대로 맛있고 비싼 버거였다. 그리고 S 말대로 쉐이크와 프라이는 꼭 주문할 필요가 없었다. 버섯을 튀김옷을 입혀 튀긴 패티가 독특하고 고소한 맛이 나서, 느끼한 걸 사랑하는 내 입에는 매우 맞았다. 인앤아웃 따위는 꺼져. ㅋㅋ

근처에서 첼시마켓 같은 곳을 구경하다가 다시 맨하튼으로 돌아왔다. 타임스퀘어에는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의 인파가 버글버글했다. 만약 레미즈 때문에 고양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간절히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신각에 제야의 종 치는 거 보러 나온 사람들 같았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기념 야구모자를 세 개 사서(세 개 사면 15불에 싸게 파는 놈) 가족룩으로 썼다. 뉴욕은 의류와 신발에는 소비세가 붙지 않아서 정말로 15불에 샀는데, 싸게 샀다고 뿌듯해하는 찰나 길거리에서 세 개 10불에 파는 걸 보고 빈정 확...
 
점심을 하도 늦게 기름지게 먹었더니 별로 저녁이 땡기지가 않아서 고민하다가 길거리에서 참으로 부족했던 비타민과 섬유질을 보충하기 위한 과일 스무디를 사먹기로 했다. 그런데 스무디 가격이 개당 8불;; 노점이신데요;; 게다가 시럽과 얼음은 넣지 않고 참 건강에 좋게 물만 넣어서 맹숭하고 싱겁고;; 얼마나 맛이 없었냐면 영양을 생각해서 무조건 완식하라고 했는데 아들이 내게 정말 애원을 했다. 못 먹겠다고. 나는 진지하게 요세미티 갈 때 먹였던 V8보다는 좀 낫지 않냐고 협박과 설득을 해서 끝까지 먹였다.
 
드디어.... 레미즈 시간.
극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이젠 어딜 들어갈 때나 소지품 검사가 익숙할 정도였다. 우리 자리는 박스석이었다. 마치 귀부인들이 부채를 들고 관람하는 듯한 커튼 쳐진 발코니 자리인데, 그 자리에 앉고 보니 시야가 많이 가려져서(무대 3분의 1이 안 보임) 귀부인들이 오페라를 진짜 볼 생각이면 이런 자리에는 안 앉았겠구나 생각했다. 어쨌든 그런 자리는 처음이라 재미는 있었다. 무엇보다 표값이 착한데!! 한 사람 표값으로 셋이 보는데 그런 게 불만일쏘냐!! 긴 공연이라 화장실에 먼저 들렀는데 화장실이 로비가 아닌 극장 안쪽에 있었고 굉장히 작았다.

낯익은 서곡과 함께 공연이 시작됐는데...
레미즈는 내 인생 다섯 번째인가 싶을 정도로 많이 본 공연인데...
대단했다.
 
뉴욕! 브로드웨이! 라 대단하게 느끼는 건가 내 자신에게 물어봤는데, 확신은 없지만 삐딱한 내가 그런 구호에 넘어간 것 같지는 않고, 정말로 노래가 대단했다. 이 공연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는 두 남자도 피곤한 상태인데 한 번도 졸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본 판틴 중 젤로 이쁜 판틴이 나왔다. (나중에 나오는 딸 코제트가 심하게 못생겨 보일 정도임) 가슴이 두근거리는 멋진 공연에 숨을 삼키며 보다 보니 인터미션이 됐는데, 아까 확인한 화장실의 참상을 보건대 이 인터미션 동안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을까 심히 염려스러웠다. (객석에서 물과 와인을 사서 마실 수가 있음)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줄이 극장을 맴돌 만큼 구성되었고, 특히 여자화장실의 체증이 심각해서 직원들이 총출동했다. 칸에서 사람이 나오자마자 1초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다음 사람을 갖다가 꽂는 방식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손님들을 화장실로 처박았다. 하루 이틀 한 진행 솜씨가 아니어서 좀 감탄했다. 나는 간신히 인터미션 안에 자리에 돌아오는 데에 성공했지만 내 뒤의 수많은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시대가 변한 만큼 에포닌은 흑인 캐스팅이었는데, 굉장히 기교를 많이 넣은 새로운 On my own을 들으며 역시 눈물 찔끔. 하지만 죽을 때엔 왜 이리 말이 많지? 싶을 정도로 노래가 길었다;; 피날레에서 들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라는 가사를 듣고는 또! 자동으로 눈물이 주르륵. 손바닥이 아프도록 갈채를 보낸 후에 밖으로 나오자 시간은 11시가 훌쩍 넘었는데 길거리에는 공연을 보고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배우를 보기 위해 출입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뮤지컬의 본고장에서 느끼는 팬들의 열기에 함께 취해...는 됐고, 빨리 들어가서 쉬려고 서둘러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레미제라블은 올해 9월 4일로 브로드웨이 상연이 끝난다고 한다. 하긴 옛날부터 그렇게 유명했던 캣츠니 오페라의 유령이니 그런 간판은 보지 못했다. 새로 나오는 히트 뮤지컬을 상연해야 하니까, (지금 가장 열렬하게 광고하는 공연은 라이온킹) 오래된 극은 내리는 것이 맞겠지. 정말 운이 좋았다. 브로드웨이에서 나는 내가 최애하는 뮤지컬 레미즈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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