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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Aug 15. 2016

최악의 컨디션 최악의 하루

가족과 이혼하고 싶었던 날

지인의 집에서 떠나는 날 아침이 되었다. 그 전날 타임스퀘어에서 이 날부터 새로 묵게 된 한인민박의 매니저 연락을 받았는데, 옆 주로 운전하고 갈 일이 있어서 약간 이른 체크인을 해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역시 물가가 미친 뉴욕답게 민박집의 규정이 매우 까다로워서 1. 이민가방 반입 안 되고(트렁크만 된다고 해서.... 한국에서 트렁크 안 가지고 온 우리는 이웃한테서 트렁크를 빌려서 왔음) 2. 시간이 이르거나 늦게 될 경우 추가 비용 10달러 단위로 붙는 곳이었다. 일찍 짐을 넣어놓고 돌아다니면 마음도 편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없는 상황이라(한인민박 묵는 2박 3일 동안 빌렸음) 그게 나았다. 당연히 예스! 라고 하고 약속을 정했는데, 아침에 록펠러센터에서 밤에 올라갈 전망대 예약을 하고 오는데 이상하게 전철이 안 왔다. 주차장에서 트렁크를 가지고 처음 가는 집을 찾아서 몇 블록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 굉장히 불안이 밀려와서;; 그리고 약속 시간 못 지킨다...라는 상황이나 상대방이 나 때문에 일정이 망가진다...라는 상황에 거의 발작적인 나의 더러운 성격 때문에 약속한 정오가 가까워졌을 때 나는 거의 패닉에 빠졌다. 결국 30분 정도 늦는다는 연락을 하고 나서 주차장에서 트렁크를 꺼내어 마구 달려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하자 12시 10분밖에 안 됐다. (정말 미친 듯이 서둘렀던 것이다) 남편은 내 성격 때문에 짜증이 이마까지 올라왔다.

방은 하루에 150불임에도 불구하고 트렁크 두 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탁자와 의자, 텔레비전 같은 건 없음! 단촐하게 더블 베드에 한 사람이 쓸 보조매트 하나, 특별히 가족이라 마스터룸을 빌렸는데 욕실도 복도 맞은편에 있었다. (우리 전용이긴 했다) 그래도 숙소 자체는 꽤 깨끗하고 새로 고친 지 얼마 안 되는 듯했는데, 안타깝게도 개조해서 닭장처럼 만든 방들의 벽이 모두 합판인 듯, 소음이 정말 여과 없이 다 들렸다. 아파트까지 가는 길에는 음침한 블럭을 하나 지나야 해서 처음엔 약간 막막했는데, 오다 가다 다시 보니 그 음침한 블럭 가운데에 경찰서가 있어서 걱정 안 해도 되겠더라.
 
어쨌든 방에 들어온 순간 오전 내내 불안초조에 시달리던 나는 뻗어버렸다. 사실은 아침부터 몸살기가 좀 있었다. 여행이고 뭐고 정말 푹 쉬고 싶었는데, 텔레비전조차 없는 민박집 방은 호텔에 비하면 너무 스산해서 기분이 더 다운됐다. 겨우겨우 기어나와 이것저것 음식도 팔고 과자도 파는 가게에서 점심을 때운 후에 남편과 애만 크루즈를 타라고 보내버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려고 노력해보았다. 저녁에 만나야 하니까 수면유도 성분이 있는 진통제는 먹을 수가 없어서 잠을 못 잤다. 나는 배터리가 다 된 전화기처럼 나 자신을 충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시간은 재빨리 흘러 록펠러센터로 가야 할 때가 다 되었다. 가기 전에 타임스퀘어에서 저녁을 먹고 가자고 연락이 왔을 때는 정말 울고 싶었지만 가족의 여행에 초를 칠 수 없으니까, 다리를 질질 끌고 혼자 지하철을 타러 떠났다.
 
아들과 남편을 만난 식당은 부바 쉬림프라고 하는 해산물 패밀리 레스토랑인데, 인기가 아주 좋았다. 테이블에 앉으려면 적어도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할 텐데, 록펠러센터의 전망대는 시간대 예약을 한 상태라서 반드시 시간 엄수를 해야 했다. 남편은 아들을 달래서 다른 거 좀 빠르고 간단하게 먹자는 식으로 얘기해봤지만 똥고집 아들은 빈정이 확 상했다. 죽어도 그걸 먹어야 한다는 분위기. 외아들에게 항상 맞추는 남편은 록펠러 다녀온 다음에 먹으러 오자고 애를 달랬고, 나는 그 풍경을 보며 열을 받았다. 가격도 안 착한 그 집을 오밤중에라도 가야겠다는, 그리고 지금 저녁은 굶어야겠다는 그 의지에는 컨디션이 안 좋은 엄마라는 변수는 전혀 작용을 안 한 것이다. 상한 빈정이 회복이 안 되는 채로 해질 무렵 록펠러센터에 올랐다. 전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지 않은 나는 처음 보는 마천루 위에서의 뉴욕 야경이었는데, 솔직히 그 전날 그 공원에서 본 풍경보다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았고 사람은 미친 듯이 많았고(시간대로 운영하는데도 그 모양이었으니 그런 제한도 없었다면 대체 어땠을까) 날씨는 좀 쌀쌀했다. 빨리 해가 져서 빨리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9시가 넘어 완전히 어두워진 다음에야 아들은 전망대를 떠났다. 그리고 의지 있게 부바 쉬림프로. 나는 배가 고파서 더 성격이 포악해진 채로(표정이 아주 볼 만했을 것이다) 그 식당까지 잠자코 따라갔다. 대기하고 있을 때 남편은 지딴에는 참다참다 한 마디를 날렸다. "그런 표정으로 있을 거면 혼자 먼저 숙소로 들어가." 악만 남은 마누라는 "배고파. 밥 먹을 거야."라고 답했다.
 

부바 쉬림프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나오는 포레스트의 전우 부바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으로, 새우튀김을 비롯한 요리 이름에 죄다 영화 캐릭터를 갖다 붙인 곳이다. 죽도록 달리던 영화 속 포레스트의 캐릭터를 따서 "멈춰! 포레스트!"라고 써진 팻말을 보면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거나 요구사항을 듣고, "달려! 포레스트!"라고 써진 팻말을 보면 오지 않는다. 점원들은 모두 매우 명랑하고 전체적으로 신이 나 있었다. 더럽게 지치고 배고픈 상태로 10시 30분이 넘어서 요리를 받았다. 맛은 다 괜찮은 편이었는데 양이 풍족하진 않았다. 세 가족이 식사하는 데 90불 정도가 들었다. 진짜 배가 심하게 고파서 엄청 먹어버리겠다, 홧김 폭풍 흡입! 을 다짐하고 있었는데 많이 먹지는 못하고 말았다. 그 대신 내 걸로 음료를 하나 시켜서 쪽쪽 야무지게 다 먹었다.
 
결국 집에 돌아온 시간은 항상 그랬듯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몸 상태는 낮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가족에 대한 서운한 마음은 너덜너덜했다.
 
그리고 전날 센트럴파크에서 긁은 내 카드는 계좌에서 인출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 정말 고장난 모양이었다;; 공짜로 먹었네;; 본의 아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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