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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Aug 28. 2016

다시 여행 기록으로 돌아와 독립기념일의 뉴욕

성조기로 장식된 하루

뉴욕 풀 일정의 마지막 날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에 올라가기 위해 예약을 해둔 날짜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 가족이 그걸 염두에 두고 용의주도하게 이 날을 노려 예약했을 리는 없다. 그냥 이때쯤 뉴욕에 있기로 하고 넉 달도 전에 그냥 정한 거였다. 어쨌든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기념하여 보낸 자유의 여신상에 독립기념일에 올라가게 된 것은 꽤 그럴싸한 우연이었다.

8시 반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아침은 바빴다. 허겁지겁 배터리공원에 가서 크루즈 줄에 섰다. 우리 말고도 많은 관광객들이 자유의 여신상에 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노점들도 줄 근처에서 부지런하게 영업 준비를 시작했다. 날씨는 아침부터 매우 쨍쨍했고, 나는 겁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 크라운까지 올라가는 티켓을 샀는데, 거기에는 무려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야 한다는 사전정보가 나를 떨게 했다. 그랜드캐년에서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한 오르막 때문에 때 아닌 오르막 공포증을 미리 앓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 전날도 골골거리다가 가족과 마찰을 겪었는데 미리 호들갑을 떨고 싶진 않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배에 올랐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섬까지 거리는 멀지 않지만 그 사이의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의 전경과 맨하튼의 스카이라인이 꽤나 볼 만했다.


배가 리버티섬에 도착한 후에 자유의 여신상의 발치에 설치된 건물로 들어갔다. 크라운 티켓을 끊은 사람들과 중간까지만 올라가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표를 가지고 들어가는데, 역시 지문을 이용하는 락커에 백팩을 넣어두고 가야 한다. 보안검색도 물론 필수. 이제부터 계단인가!!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어랏? 엘리베이터가 있잖아!! 오, 땡큐!! 대신 그 엘리베이터는 이곳에 근무하는 정식 직원인 레인저가 동행해서 조작해줘야 한다. 많은 관람객들이 그 엘리베이터를 못 봤든지 아니면 레인저와 못 만났는지 계단을 선택해서 올라갔다. 숫자는 5층이지만 높이는 꽤 높은, 여신의 발 부분에 해당한다. 거기서부터 이제 등반이 시작되었다. 정신없이 뱅글뱅글한 나선계단을 오르면서 속으로 '간다! 엘리베이터로 비축한 체력을 여기서 쏟아서 해낼 것이다!'

그리고 각오를 매우 빡세게 한 탓이었는지 나는 중간에 난간에 매달리며 주저앉지 않고 여신님의 왕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우 좁은 곳이라 레인저가 아슬아슬하게 어딘가에 매달려서 뭔가를 딛고 대기하고 있고, 우리가 관람할 때엔 한 커플과 우리 가족, 다섯 명이 있는 것만으로 꽉 찼다. 솔직히 뿌연 유리 바깥으로 궁색하게 쭈그려서 바깥을 쳐다보는 그림이 내가 봐도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은데,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 우리가 부러울지도 모른다. 다시 그 나선계단을 내려오면서 천천히 여신의 바깥으로 나가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커다란 조상이다 보니 사람들이 여신을 카메라에 넣기 위해 바닥에 누워서 촬영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충분하게 여신을 구경하고 나서 나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돌아가다가, 처음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한 프래챌을 사봤다. 암염이 하얗게 뿌려진 물건이었는데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맛없는 빵 종류는 처음 먹어봤다. 빵 부분은 정말로 아무맛도 나지가 않고, 소금은 지독하게 짰다. 어느 부분을 먹어도 적당하게 맛있는 부분이 없었다. 견딜 수가 없어서 있는 힘껏 소금을 떼내고 셋이서 나눠 먹었지만 점심 먹기 전에 허기를 달랜다는 목적 하나는 확실히 달성했다. 그걸 먹고 나니 입맛이 뚝 떨어지더라고.

횃불까지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페리가 중간에 엘리스섬에 머물렀다. 이민자들의 한과 희망이 서린 유적지여서 관련 전시도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타이타닉 영화를 생각했다. 잭을 잃고 나서 살아남은 로즈가 입항하던 곳이다.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며 코트 안에 숨겨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발견하던가. 대서양을 건너 시야에 들어오는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을 찬란하게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엘리스섬의 이민자 심사는 (지금도 존재하는 비자 심사처럼 ㅋ)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모멸과 앞으로 닥칠 이민자의 시련을 상징하는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엘리스섬에서 다시 로우 맨하튼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일본식 라멘 같은 것을 파는 작은 가게였는데, 맛은 괜찮았다. 다 먹고 나서 바로 앞에 있는 월스트리트 황소 불알을 만지러 갔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어 그 황소의 불알을 만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다면야? 어디 가서나 만날 수 있는 한국인 관광객과 협력하여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나서 월스트리트를 구경했다. 뉴욕 주식 교환소에 걸린 어마무시하게 큰 성조기가 오늘이 특별한 날인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 있는 페더럴홀에서는 미국 건국 당시의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퍼포먼스도 하고 뭔가 교육적인 멘트도 하고. 나는 항상 내가 좀 흥미가 없는 것을 구경할 차례에는 혼자 체력을 충전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렸다. 성조기를 패션 아이템으로 장착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더군! 개도 입는다, 성조기!

그 다음에는 2001년 그날, 전세계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 사건이 터진 곳으로 갔다.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있던 그곳은 두 개의 커다란 연못으로 만들어놨다. 끝없이 흐르는 물이 바닥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가 어쩐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사각의 연못 가장자리에는 그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중간중간 이름 위에 꽂힌 장미는 유족들이 놓고 간 것일까. 쓰러진 월드트레이드 센터 모양으로 만들어진 뮤지엄에 들어가면 그 사건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꽤 담담하게 알려주는 전시가 펼쳐진다.

911메모리얼에서 가장 의외였던 점으로 나는 그 "담담함"을 꼽고 싶다. 3천 명에 달하는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만 해도 3천 개는 될 텐데, 눈물콧물 쑥 뺄 수 있는 모든 감상적인 사연을 자제하고 그 날 벌어졌던 사건의 타임라인과 실제 그 자리에 있었던 파손된 잔해와 물건들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그 날을 이야기한다. 미국 영토 바깥에서 항상 전쟁을 수행하고 주도하는 미국의 입장을 반성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비행기 충돌을 목격하는 시민들의 표정만으로도 모든 설명은 불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한낮이지만 이 특별한 날의 특별한 불꽃놀이를 관람하기 위해 느긋하게 브룩클린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풍스럽고 아름답고 아직도 제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브룩클린 브릿지를 걸어서 건너가 위해서 지하철을 그 앞에서 일부러 내렸다. O 오빠와 만나던 날 차를 타고 건너갔던 다리를 이번엔 걸어서 건넜다. 이 다리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 가을날의 동화에서 삼판이 그렸던 피사체이다. 사랑하는 제니퍼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 애태우던 구질구질한 그는 브룩클린에 살았다. 그 80년대의 브룩클린과는 달리 지금의 브룩클린은 꽤 쾌적한 지역이 되어 있는 듯했다. 청량한 날씨 덕분에 금문교의 악몽 같은 체험과는 다르게 상쾌한 도하가 가능했다. 다 건넌 후에 브룩클린 브릿지 파크로 불꽃놀이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열심히 걸어갔는데, 공원 입구 근처부터 엄청난 인파에 입이 딱 벌어졌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경찰 동원됐고 들어갈 때 보안 검사까지 하고 있었다.

일단 3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쉑쉑버거를 테이크아웃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캠핑의자를 가져온 사람들이 막 부럽고... 강가 산책로에 쭈그리고 앉았는데 자꾸 경찰이 다니면서 앉지 말고 일어나라고 한다. 안 그래도 서러운데...

처음으로 간이화장실도 가봤다. 그래도 그때(일찍) 가서 못 볼 꼴을 보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시간은 더럽게 안 갔고 불꽃놀이 한 시간 전부터는 비까지 내렸다. 메이시 백화점의 협찬 로고를 매단 커다란 뗏목에서 불꽃이 오르기까지 결국 네 시간 정도 난민처럼 기다렸다. 한국에서 J가 선물했던 아주 작은 우산이 아니었다면 가관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꽃은 솟았다. 짧고 굵게 아주 아름답게.

전혀 계산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있던 위치는 불꽃에 취하기에 최고, 정말 최고의 자리였다.


돌아오는 길, 그 인파가 지하철로 물결을 이루며 이동하는 것을 보고 내심 떨었는데 잘 훈련된 경찰이 지하철역에서 제역할을 해줬고 검표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분하지만 선진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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