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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량진법잘알 Jun 08. 2022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작성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까?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작성하는 편이 낫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작성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까?


아무리 조악한 계약서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작성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당사자 간에 구두계약이 이루어졌더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현출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구두계약의 경우 서로가 이해하고 인식한 내용이 일치한다는 점을 보증할 수 없으며,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증언을 통한 입증은 정확하지도 않고 세부적인 계약의 내용을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비록 모든 부분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분쟁 예방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다.


그렇다면 모든 경우에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까? 우리는 택시를 탈 때마다 계약서를 쓰지는 않는다. 택시운송사업자와 여객 간의 권리와 의무를 다루기 위하여 미리 운송약관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서면으로 된 계약서가 작성된 것과 같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물리적인 행위가 없어 당사자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실제로는 적절한 계약서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집단적·반복적으로 행하여지는 거래에서는 이미 법조인들이 배후에서 적당한 법률관계를 설계해놓았기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상황은, 의도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다. 계약서 작성에 이르는 유∙무형의 제반 비용이 계약서 작성으로 인한 이익을 초과하는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하여 실제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이다. 글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더욱 세부적인 협상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거나 사실은 상대방의 의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각 당사자가 이해득실을 따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서로의 신뢰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 수 있다. 혼인 성립 전에 이혼에 대비하여 재산분할을 위한 부부재산약정을 하기는 쉽지 않은 것과 같다. 그렇기에 당사자 간 한 협상을 개시하는 것보다 현재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불합의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는 당사자들이 계약서 미작성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이의 없이 인용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경우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계약서 미작성 시 적용될 수 있는 법률관계에 대한 전문가의 면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인 선택일 수도 있고, 분쟁가능성이 낮다는 미래에 대한 개연성 있는 예측을 근거로 한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에도 의도적으로 특정 내용에 대해서 모호하게 내버려두기도 하는 것처럼, 중요 부분의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경우에도 전략적으로 전체 계약관계를 불명확하게 놓아둘 수도 있는 것이다.


위와 같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하여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로 정한 예외적인 경우라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행위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법률관계에서는  설적인 것이 모호한 것보다 낫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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