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약을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까?
중요한 계약은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중요한 계약은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고, 중요한 계약을 담은 계약서는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중요한 계약의 정의에 대하여 언제나 통용되는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예시를 제시할 수는 있다.
첫째, 일회적인 거래관계는 반복적인 거래관계보다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흠 있는 계약서에 관한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의 구조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반복적인 상호작용에서는 자발적인 계약 준수가 가능할 수 있더라도, 일회적인 상호작용에서는 상호협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게임이론의 일반적인 분석이다(박종준,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IPD) 모델과 공동체”, 철학 제118집, 2014, 167-168쪽). 즉, 반복적인 거래관계에서는 계약서에 예상치 못한 허점이 있더라도 당사자 간에 신의와 성실에 따라 전반적인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계약서를 수정하기 쉽다. 그러나 일회적인 거래관계에서는 상대방의 호의를 쉽게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계약서의 허점을 이용한 기회주의적인 주장에 대비하여야만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계약체결이 예정되어 있는 반복적인 부품거래에서는 수량이나 가격과 같은 주요 부분에 오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구애받지 않고 양 당사자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거래조건에 따라 계약조건을 정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달리 매도인이 자신의 모든 주식을 매도하기로 한 일회적인 주식거래에서는, 무효인 풋옵션과 같이 계약서에 결함이 있는 경우(서울고등법원 2011. 6. 23. 선고 2010나124153 판결 참조), 이익을 볼 수 있는 당사자는 법원에 소 제기 하는 방안을 상대적으로 더 쉽게 택할 수 있다.
둘째, 선례적 의미가 있는 계약은 그렇지 않은 계약보다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오랜 기간 참고하게 될 계약은 일반적인 계약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예를 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신사업을 기획하고 그 시범사업을 설계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참고할만한 유사한 법률관계를 찾기 어려워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작업임에도, 자칫 계약의 중요도를 잘못 판단하면 필요한 자원을 적절하게 투입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당면한 계약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어렵지만 더 나은 접근방법 대신 쉬운 임시적인 해결책을 택하게 된다. 마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말하는 기술부채(technical debt)와 같이, 계약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어느 시점까지는 사업을 진행하는데 직접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법률관계가 관행으로 고착되어버리면, 시간이 지난 후 잘못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최초에 지불하여야 하였던 것에 비하여 더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셋째, 사회적인 영향이 중대한 계약은 그렇지 않은 계약보다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모든 계약서는 의도치 않게 공개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사자 간 비밀유지의무를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중요한 계약이라면 국회, 행정부, 법원 등에서 강제로 입수할 수 있고 결국 대중과 언론에 공개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해관계인이 많거나 이해관계인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미칠 수 있는 등 사회적인 영향이 중대하다고 판단된다면, 반드시 제3자의 시각에서 논란이 될 부분은 없을지 검토되어야 한다.
넷째, 다른 계약에 영향을 미치거나 참고가 될 수 있는 계약은 그렇지 않은 계약보다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다른 계약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정의하는 역할을 하는 계약, 기본계약으로서 개별 거래들의 토대가 되는 계약, 유사한 계약에서 인용될 것이 예정된 계약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다수의 계약이 켜켜이 쌓여있거나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거래의 경우에는 개연성 있는 가상의 사례를 모의실험 하며 각 계약의 연결에 문제는 없을지 확인하여야 한다.
의식적으로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중요한 계약서를 놓칠 수 있으므로, 비록 법리적으로 큰 의미 없는 계약이라 할지라도 항상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