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렇게 불며든다.
템플스테이의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니, 사실은 날이 밝기도 전에 동생이 기상 시간인 네시 반에 나를 깨웠다. 동생은 결국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동생과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양치를 하고 있자 하나둘씩 누운 자리에 몸을 일으켰다. 평소에 출근을 위해 일어나는 오전 여섯 시 반에도 일어나기 힘들어하는데 막상 아홉 시에 잠을 자고 네시 반에 일어나니 그렇게 피곤하지 않은 게 신기했다. 다섯 시가 되자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미 모두 눈을 뜨고는 있지만 몸은 바닥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종소리를 들으면서 또다시 기신기신 일어났다.
어제와 같이 반듯하게 개량한복을 입고 들어오신 팀장님 뒤로 두줄로 나란히 좌복을 놓았다. 다리가 아파 명상으로 대체하는 동생을 제외하고 좌복 아래 나란히 선 우리 모두는 팀장님이 틀어놓은 생명의 소리에 맞춰 백팔배 명상을 시작했다. 사실 백팔배에 대해서 템플스테이 이전에 가장 고민을 했다. 가장 해보고 싶지만 또 가장 하기 두려웠던 체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사실 집에서 연습을 또 해봤다. 그러나 20번을 채 채우지도 못한 채 포기를 해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도 적당히 하다가 앉아서 명상으로 대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백팔배를 하는 건 조금 달랐다. 냅다 일어나자마자 다음 절을 해버렸던 내 연습 방식과 다르게 하나의 말씀을 들은 뒤 절을 했고 빈도는 말씀의 길이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지만 대체적으로 천천히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할만하겠는데?라는 생각으로 오십 배를 넘어가면서 에어컨을 튼 방이었지만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팔 십배를 넘어갔을 때 허벅지에 힘이 빠져 일어나는 세 번 중 한 번은 휘청거렸다. 백배가 넘어가면서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마스크 너머로 계속 웃음이 나왔다.
백팔배 명상이 끝나고, 이미 육십백부터 배가 고팠던 나는 아침 공양을 한다는 말에 누구보다 빠르게 나갈 채비를 했다.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소나기처럼 오는 비는 많이 오다가도 금방 그치고 햇빛이 나곤 했다. 각자 자신의 우산을 챙긴 뒤 아침 공양을 하러 갔다. 배가 고파서 너무 달려온 탓인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밖에서 조금 기다린 이후에야 아침 공양을 할 수 있었다. 아침의 주 메뉴는 시래기국밥이었다. 반찬으로 나온 나물과 떡과 함께 주린 배를 채우며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식사를 마치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렸다. 그러다 잔디밭에 조용히 걸어 다니는 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고양이는 독특하게 깔때기를 차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우비로 보이는 옷도 입고 있었다. 단순하게 중성화 수술을 한 건가 얘기하던 우리에게 지나가던 스님이 다른 동물과의 다툼으로 인해서 상처를 입어 치료받은 거라고 설명해주셨다. 저런, 걱정하는 우리의 눈길을 받던 고양이는 이내 다른 스님에게 안겨 사라졌다.
아침 공양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비는 잔잔하게 계속 내렸다. 다음 프로그램은 더군다나 절 뒤로 이어진 길을 걷는 산책인데, 결국 팀장님은 산책을 하지 않고 사찰을 좀 둘러본 뒤 교육원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그리고 어제 간 대적광전에서 절을 올린 뒤 대적광전의 오른쪽에 위치한 용화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왼쪽에 위치한 약사보전에서 또 한 번 절을 올렸다. 이후 대적광전의 뒤편으로 가 사찰에서 지내는 제사 이후 음식을 동물에게 나누어주는 공간과 49제를 지낸 위패를 태우는 굴뚝까지 설명을 들은 뒤 다시 되돌아갔다.
교육원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범종루에 계신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동생은 어제 무지개를 보라고 한 스님이라고 알려줬다. 스님과 팀장님의 얘기를 통해 취소됐던 산책 대신 스님과의 차담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교육원으로 돌아가자 분주한 스님들의 모습이 보이고 방에는 커다란 연꽃이 들어간 연차를 가운데 둔 채 좌복이 둘러놓아져 있었다. 향기가 진한 연꽃차와 함께 놓인 건 견과류가 들어간 곶감이었다.
가벼운 담소를 나누면서 찻잔이 비워질 때 옆에 앉아 계신 스님께서 내 잔을 채워주실 때 몸이 들썩거렸다. 잔을 들어 술을 따르는 사람에게 잔을 기울이는 주도에 익숙했기 때문에 정자세로 앉아 차를 따르는 것을 기다린 뒤 차를 다 따른 후에 합장을 하는 순서가 익숙하지 않았다. 분명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른편에 계신 스님의 찻잔이 비는 것을 계속 눈여겨봐야 했기에 반 정도만 기억에 남는 게 아쉬웠다. 연꽃에 관한 시를 돌아가면서 읽었고 서로의 소개를 첫날과 다르게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했으며 마지막으로 이른 시간에 일어난 우리를 위해 싱잉볼을 들으며 잠시 낮잠을 청했다.
한 시간 정도 잠을 잔 뒤 점심 공양까지 한 시간 정도 남은 시간을 동생과 봉녕사 안에 있는 카페에서 보내기로 하고 이동했다. 금라로 이동하자 이미 여러 사람들이 카페를 북적이게 했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자리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팥빙수 하나를 시켰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유 얼음이 깔리고 위에 진한 팥과 떡이 올려진 팥빙수는 정말 맛있었다.
한 시간 동안 카페에서 팥빙수를 먹다 보니 점심 공양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템플스테이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였기 때문에 잠시 쏟아졌던 비가 잠잠해진 틈을 타 마지막 공양을 하러 갔다. 이미 숙면을 취하고 향적실에 와있던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공양을 배식했다. 마지막 메뉴는 감자가 들어간 수제비와 녹두전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제일 맛있게 느껴졌다. 특히 녹두전은 한 번 더 먹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템플스테이의 프로그램이 그렇게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템플스테이를 경험하면서 느낀 점을 쓰고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겼다. 잠깐 일박이일의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배웅하는 팀장님과 더 대화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비록 체험형의 바쁜 프로그램 일정을 따라가는 게 때로는 버겁고 지치기도 했지만 덕분에 템플스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경험한 거 같아 뿌듯했다. 만약 다음에 또 템플스테이를 하게 된다면 휴식형을 선택하겠지만 최대한 프로그램을 참여하는 방향으로 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오자마자 하루 동안 못 먹었던 고기와 술을 마시면서 짧았지만 바빴던 템플스테이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