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차게 굴리고 밥 먹이고 재우는 곳 = 템플스테이
저녁 공양을 하기 위해 향적실 앞에 모였다. 이미 몇몇의 스님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음식을 먹는 소리와 음식을 만드는 공간 안에서 간간히 대화하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조용했다. 묵언이라는 종이가 써붙여있는 걸 나중에 보긴 했지만 그걸 보기 이전에도 도저히 떠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마치 수능 100일 전 학교 근처 도서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바로 하는 건가 싶었는데 아무도 먹지 않아 멀뚱히 앉아있었다. 그러다 팀장님이 합장을 하신 뒤 수저를 들자 그때서야 다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음식의 종류는 다양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퍼올 수 있으며 양 조절도 본인이 알아서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하는 음식만 적당히 조절해서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저녁 메뉴는 짜장밥과 동치미, 각종 나물과 수박주스였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던 것 같았지만 기억이 안 난다.
식사를 마치고 문 밖을 나와 건물 맞은편에 있는 수돗가에서 식기를 설거지했다. 그리고 절에서도 세제로 설거지를 하는 걸 알 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쨌든 깨끗하려면 세제를 쓰긴 해야 하는데 편견도 다양하다 싶다. 식사를 마치고 나란히 음식을 하는 분들이 있는 곳을 향해 합장을 한 채 '잘 먹었습니다!'를 외친 뒤 교육원으로 되돌아왔다. 사실 이다음 프로그램은 대종 체험이라고 해서 36번을 종을 치는 스님과 함께 종을 한 번씩 쳐보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남았기 때문에 나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것이었다.
교육원으로 돌아온 뒤 휴대폰 충전기를 꽂은 채 날씨 때문에 녹아 있는 우리에게 또다시 팀장님이 찾아오셨다. 또 한참을 얘기하신 후 이제 5분 뒤에는 일어나서 나가야 한다는 말을 남긴 채 나가셨다. 나와 동생은 또다시 기신기신 몸을 일으켰다.
다시 사찰로 이동해서 범종루로 향하니 이미 종을 치기 위해 준비 중인 스님이 보였다.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스님이 종을 치기 시작할 때까지 두 손을 모은 상태로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 등 뒤로 목탁 소리가 울리면서 스님은 힘을 실어 종을 치기 시작하셨다. 종이 울리면서 우리는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한 명, 한 명씩 올라가 스님을 향해 반배를 하고 두 손을 가져다 댔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이루고 싶은 소원을 생각하라는 팀장님의 말이 떠올라 강하게 떠올렸다. '40키로!' 그리고 종을 치자마자 종소리에 크게 놀란 채로 내려왔다.
종을 다 치자마자 다시 한 줄로 서서 저녁 공양을 하기 전 저녁 예불을 연습했던 대적광전으로 향했다. 이제 연습이 아닌 실전이다. 연습했던 대로 한 줄로 이동해 순서대로 법당에 들어선 뒤 미리 만들어 놓은 본인의 자리에 섰다. 저녁 예불을 하기 위해 미리 계신 스님들의 목탁 소리에 맞춰 첫 번째 절을 한 뒤 순서대로 그다음 절을 하려고 하는데 갑작스럽게 팀장님이 우리에게 미리 나눠주었던 경전을 펼치시더니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나와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이미 스님은 경전을 읽고 있었고 우리도 덩달아 스님과 함께 그 경전을 따라 읽었다.
사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정한 높낮이로 외워서 말한다는 게 더 신기했다. 역시 이게 직업이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전을 읽은 뒤 미리 연습했던 절을 순서대로 하고 저녁 예불을 마친 뒤 법당을 나왔다.
드디어 사찰에서의 프로그램이 모두 끝났다. 아직 남아 있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두 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멍을 때린 뒤 샤워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 쿨하게 샤워는 건너뛰어 버리는 동생을 뒤로하고 머리는 내일 감자고 생각한 뒤 몸을 대충 씻고 나왔다. 그동안 동생은 스님이 뒷문을 두들기며 무지개를 보라고 하는 소리에 스님과 단 둘이 무지개를 봤다고 한다. 모두 화장실과 샤워실에 있는 동안 문을 한참 동안 두들긴 터에 손이 아프다고 하는 스님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는 동생의 얘기에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은 자신만 무지개를 봤으니 행운아라고 하는데 나도 동생이 올린 무지개 사진에 그 행운을 조금 나눠 받은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개인 정비를 모두 끝내고 팀장님이 들어왔다. 따로 방을 쓰는 유일한 남자분도 멀뚱멀뚱하게 같이 들어왔고 우리는 모두 싱잉볼 체험을 하기 위해 이번에는 좌복이 아닌 자기 위한 매트를 싱잉볼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싱잉볼은 사실 영상으로만 많이 봤기 때문에 실제로는 처음 봤는데 꽤나 옛날 밥그릇처럼 생긴 모양새였다. 연예인들이 사용한다고 가지고 나오는 싱잉볼은 꽤나 색도 예쁘고 자기 같은 형태였는데 굉장히 쇠 냄새가 날 듯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다음날까지 손에서 쇠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싱잉볼은 내 월급의 1/3 정도 되는 금액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게 가장 높은 금액 대였지만 생각보다 값이 나간다는 생각을 했다. 밥그릇 정도 되는 크기를 각자 왼손바닥 위에 들고 싱잉볼 막대를 오른손에 헐렁한 게 든 뒤 힘을 뺀 채로 겉을 한 번 쳤다. 어떻게 글로 나타내지 싶을 정도로 깊은 소리가 났고 우리는 그 소리를 스스로의 양쪽 귀와 정수리, 배꼽 아래로 향하도록 싱잉볼을 움직였다. 그리고 둘씩 짝을 지어 (나는 동생과) 서로를 향해 싱잉볼의 소리를 들려줬다.
눈을 감고 조용하게 가만히 있는 거 자체가 둘에게는 웃음 포인트라 웃느냐고 제대로 체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싱잉볼 체험이 가장 흥미롭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다음날 퇴소하고 이 프로그램에 대해 부모님에게 말하면서 싱잉볼을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엄마는 단호하게 영상으로 들으라고 했다.
싱잉볼 체험을 끝내면서 각자의 싱잉볼을 원래의 자리에 두고 우리는 미리 깔아놓은 매트에 누웠다. 팀장님이 가운데 앉아 싱잉볼을 주기적으로 치며 눈을 감은 채 싱잉볼 소리를 들으며 깊게 잠을 청했다. 팀장님은 싱잉볼을 1시간가량 소리를 냈고 1시간 뒤 조용히 남자분을 깨워 방을 나갔다.
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채 잠을 자고 있던 나는 30분을 더 잠을 잔 뒤 눈을 떴고 렌즈를 뺀 뒤 다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가 너무 고단했던 탓이었는지 렌즈를 빼는 와중에도 굉장히 졸음이 몰려왔다. 그 와중에 동생은 잠이 전혀 오지 않는다면서 휴대폰을 하고 있었지만 그만하라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결국 알아서 하라며 먼저 잠을 청했다. 이미 나와 같이 싱잉볼에 잠이 든 22살의 두 친구들은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그렇게 템플스테이 첫 번째 날이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