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4년 만에 첫 외박
이번에 강원도 나랑 같이 가자.
혼자 여행을 계획 중이던 남자 친구에게 통보하듯이 말했다. 물론 말을 하기 직전에 가족에게도 남자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통보했다. 감히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말이지만 결혼 날짜까지 잡은 와중에 나온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보다 순조롭게 여행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4년 만에 처음 여행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느 때보다 들뜬 마음으로 준비했다. 여행에 들어가기 한 달이나 더 남은 시점부터 숙소를 예약했고 계획을 짰다. 일정보다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서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계획 짜기였지만 여행 당일이 올 때까지 한 달이 일 년 같은 기분으로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여행 1일 차
출발 - 평창 휴게소 - 동해 도착 - 거동 탕수육 - 한섬 해변 - 전망대활어회센터 - 숙소 도착
전 날 한바탕 짐을 싸면서 잠도 설친 채로 여행 1일 차가 시작됐다. 잠이 오지 않아 두 시간 남짓 정도 겨우 자고 일어난 채로 나갈 채비를 했다. 역시 똑같이 제대로 잠을 못 잔 채로 온 남자 친구를 만나 출발했다. 드디어!
첫날의 목적지는 강원도 동해였다. 예정 시간은 4시간이었고 11시에 출발했으니 적어도 세시에는 점심 겸 저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강원도에 들어서자마자 차는 무섭게 막히기 시작했다. 차선이 적고 합류 구간이라 막히는 건가 싶었던 생각은 오산이었다. 우리가 서 있는 2차선 도로 중 한 차선이 공사 중이었고 그 공사는 우리가 동해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이어져 있었다. 덕분에 23킬로 거리의 평창 휴게소를 한 시간 넘게 걸려 겨우겨우 점심 끼니를 채우면서 세시에 도착할 줄 알았던 동해는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다의 짠내가 진동했다. 바다 근처로 오긴 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아침에 먹은 두유 하나와 중간에 휴게소에서 먹은 소떡소떡 하나가 전부였기 때문에 배고픔이 밀려왔다. 바다를 구경하기도 전에 식당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동해에서 유명한 '거동 탕수육'. 문어를 넣고 튀긴 문어 탕수육이었다.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아직 이른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웨이팅이 있었다. 잠깐의 웨이팅 후 창가에 자리 잡았다. 이미 웨이팅을 하면서 문어가 올라간 짬뽕과 탕수육을 주문해놨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먼저 나온 짬뽕을 먹으면서 차에서 생긴 피곤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어제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해장되는 기분을 느끼면서 국물을 끊임없이 마셨다. 문어도 부드러웠고 해물이 녹아든 국물도 진하고 좋았다. 탕수육이 나오게 되면 국물과 함께 먹으면 좋을 거 같아 얼른 탕수육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탕수육을 싣고 로봇이 다가왔다. 남자 친구와 나의 원픽인 파주의 '신간 짬뽕' 식당의 탕수육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문어의 쫄깃한 맛 덕분에 두꺼운 튀김으로 인해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조금 잡아주는 듯했다. 그리고 미리 나와서 먹던 짬뽕과도 잘 어울렸기에 국물과 탕수육을 번갈아 먹으며 대자로 시킨 탕수육을 거의 다 먹을 수 있었다.
배도 부르고 피곤함도 조금 가라앉은 상태에서 한섬 해변으로 향했다. 주차장과 이어진 다리를 건너 데크길을 조금 걷다 보니 금세 모래사장의 해변이 나왔다. 그 와중에 챙겨 온 샌들이라던지 남자 친구 차에 항상 두었던 슬리퍼로 갈아 신지 않고 운동화 그대로 신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모래만 밟고 물을 들어가지 말자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동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고 나서 조용히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다. 줄곧 멀리 여행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바다라고는 서해 바다만 자주 봤었는데 오랜만에 동해 바다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처음에는 손에만 물을 묻히기 위해 파도가 치는 부근에 쭈그려 앉아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다 결국 높아진 파도에 신발과 치마가 젖게 됐고 그 이후에는 그냥 신발 벗어서 옆에 두고 놀았다. 워낙 물을 묻히기 싫어하는 남자 친구를 두고 혼자 찬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이미 신발과 양말, 치마 끝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오히려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물로 대충 발에 묻은 모래와 바닷물을 씻어내고 바닷물에 적셔진 운동화는 드렁크에 고이 모셔둔 뒤 가져온 샌들로 갈아신었다. 원래 이후 일정은 동해에 5일장을 구경하며 숙소에서 먹을 야식을 사서 이동하는 거였지만 이동시간부터 딜레이 된 터라 5일장은 이미 일찌감치 끝나버렸고 야시장 역시 금요일부터 주말 동안 열었기 때문에 목요일 저녁인 오늘은 시장 구경하긴 힘들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는 거동 탕수육을 먹었던 회센터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이미 평일 저녁 야외 회센터는 모두 문을 닫았지만 실내 회센터는 몇 군데 문을 열었기 때문에 겨우겨우 간단한 야식을 할 정도의 회를 뜰 수 있었다.
회를 뜨고 나서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원체 술을 마시지 않아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던 남자 친구는 들어가자마자 막걸리와 캔맥주를 집어 들었다. 술 먹게?라고 물어보니 오늘은 운전을 많이 했기 때문에 먹어도 된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남자 친구가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 첫 여행이다 보니 처음 보는 남자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도 좋았다.
야식으로 먹을 것들을 챙겨 숙소로 이동했다. 에어비엔비로 저렴하게 예약한 숙소는 새하얀 색이 테마인지 벽지부터 침대, 커튼까지 새하앴다. 비록 군데군데 어설프게 보수된 흔적이나 미처 보수되지 않은 하자도 있었지만 굉장히 저렴한 비용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만족했다. 숙소를 대충 구경하고 가져온 짐을 정리한 뒤 먹고 바로 잘 준비를 다 끝마치고 나서야 챙겨 온 야식들을 테이블에 세팅했다.
소소하게 티브이 프로그램을 같이 시청하면서 가볍게 야식을 먹는 상황이, 막걸리와 맥주의 조합이 얼마나 맛있는 줄 아냐면서 신나게 막 맥을 마시는 남자 친구와 웃는 상황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려고 저녁 먹자마자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상황이 좋았다.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야식 타임이 종료되었고 다음 날 오전부터 일정이 빡빡했기 때문에 얼른 잠을 청했다. 체크아웃 시간은 11시였지만 우리는 9시 전에 나갈 예정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