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아쉬웠던 여행 마지막 날.
여행 마지막 날
척산 족욕공원 - 설악산 자생식물원 - 봉포 머구리집 - 내린천 휴게소 - 여행 끝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전날 아침에는 바쁘게 움직였는데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새벽같이 떠진 눈과 다르게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늦잠을 자는 남자 친구를 깨우고 어제 다 보지 못했던 '신병'을 틀어놓고 나갈 준비를 했다. 의욕적이었던 어제와 다르게 일분 흐르는 것조차 아쉬워서 입을 삐죽이며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퇴실시간인 11시가 되었다.
아침에는 해물라면이 먹고 싶었지만 밤새 시끄럽게 북적이던 포장마차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결국 해물라면을 오전에 파는 곳을 찾지 못한 우리는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웠다. 뭐 어쨌든 라면 먹었으니까 됐지 뭐.
배를 간단하게 채우고 설악산 근처에 있는 척산 족욕공원으로 이동했다. 사실 온천 체험장이 있는 곳에 족욕 체험장이 작게 있는 곳이지만 족욕이라도 어디인가 싶어서 체험해보기로 하고 도착했다. 1,2월을 제외하고 매년 운영하고 있는 족욕공원은 운영비로 이용되는 수건과 방석 대여료 1,000원 정도를 제외하고 입장료는 무료였다. 거기에 온천수로 삶은 계란도 판매하고 있어 방금 라면을 먹긴 했지만 와 본 김에 먹는다 생각하고 계산했다.
신발을 벗고 발을 씻은 뒤 족욕 공간으로 들어왔다. 족욕 공간은 크게 바닥이 타일로 되어 있는 곳과 지압돌로 이뤄진 곳 두 곳이 있었는데 타일로 이뤄진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지압돌로 이뤄진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름 매일 같이 회사에서 지압 슬리퍼를 신고 있어 지압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맨발로 지압돌을 딛는 순간 억 소리가 나면서 절뚝거리며 데크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뜨겁거나 따뜻할 줄 알았던 족욕 물은 웬걸 굉장히 시원하다 못해 차가웠다. 족욕은 원래 더운물로 하는 거 아닌가.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발을 담그고 노는 와중에 남자 친구는 계란과의 사투를 벌였다. 온천수로 삶아진 계란답게 온도가 상상을 초월해 남자 친구는 계란을 잡았다 놨다를 반복하며 계란 껍데기를 벗겼다. 물론 나는 껍데기를 벗겨낸 계란을 편하게 먹었다. 고마워 남자 친구.
계란을 다 먹고 오늘 아침까지 결국 완결을 보고야 말은 신병의 에피소드, 메이킹 영상까지 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오는 와중에도 곡 소리를 내며 나왔지만 퉁퉁 불은 느낌의 발의 시원함이 몸 전체에 퍼진 거 같아 꽤나 기분이 좋았다. 발에 물기를 닦아내고 수건과 방석을 반납한 뒤 다음 목적지인 설악산 자생식물원으로 향했다.
자생 식물원에 도착했을 때 하늘이 조금 어두워진 걸 느꼈다. 안 그래도 족욕공원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오는 거 같긴 했는데 금세 또 비가 올까 우산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자생식물원에서 알게 된 건 방금 전까지 있던 족욕공원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산책로가 이어져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걸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알았어도 차를 타고 이동했을 것이다. 자생식물원은 말 그대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공원이었다. 그러면서도 미로원, 고사리원, 온실원 등 다양한 테마단지도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조용하게 산책하길 좋아하는 우리 둘에게는 좋은 공간이었다. 비록 비가 내릴 거 같은 하늘과 점점 고파오는 배 때문에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또 한 번 오게 되면 조금 더 넓게 전체적으로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드디어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여행의 마지막 만찬은 바로 물회였다. 사실 마지막 날 어떤 걸 먹어야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여행 중간에 엄마와 했던 통화에서 동해에 갔으면 유명한 물회 집에서 물회를 먹고 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마지막 날의 식사로 정해버렸다. 내가 알고 있던 유명한 물회 집은 '청초수물회'였지만 이미 내가 한 번 가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남자 친구와 나 둘 다 가보지 않은 물회 집인 '봉포 머구리집'으로 향했다.
꽤나 들어가는 입구가 좁고 바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한 바퀴를 다시 돌면서 애를 먹었지만 들어오자마자 운 좋게 주차하는 공간을 찾아서 주차를 한 뒤 웨이팅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유명한 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건물은 총 4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건물 내부도 꽤나 널찍했다. 우리 앞으로 23팀이나 있다는 말에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테이블 회전율이 빠른지 남은 팀이 금세 줄어들어 30분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웨이팅을 하는 동안 원래는 전복 해삼 물회와 홍게살 비빔밥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막상 올라가서 주문을 할 때 해삼이 품절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해 어쩔 수 없이 전복 모둠 물회와 홍게살 비빔밥을 주문했다. 여기서 소면 추가는 센스.
비록 해삼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해산물이 1인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들어찬 물회와 홍게살이 양념장과 고소하게 어울리는 홍게살 비빔밥에 적게 시켰나? 싶은 생각이 쏙 들어갈 정도로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다. 창가 자리에 앉지 못했던 아쉬움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었다. 다 먹었나 싶을 때 젓가락으로 국물 아래를 건져 올리면 또다시 회가 나타나는 바람에 결국 숟가락까지 동원해 나온 해물을 모조리 다 먹을 수 있었다. 물회를 다 먹고 나서 계산을 하고 나와 차에 앉는 순간 서로 아쉬움에 몸부림을 쳤다. 이제 여행 일정이 정말 끝이 났다.
속초에서 돌아오면서 장거리 운전에 피곤해 보이는 남자 친구에게 계속 말을 걸다가 중간에 내린천 휴게소에 한 번 내려 군것질을 했다. 차에서 먹을 초콜릿을 사고 달달한 추로스와 캐러멜 마키아토를 사서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다. 집에 도착할 때가 되자 저녁 7시가 되었다. 미리 약속되어 있던 우리 부모님과의 저녁을 먹은 뒤 남자 친구를 배웅했다. 정말 2.3초 같았던 여행이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이 글을 쓰는 이 와중에도 여전히 지나온 여행이 꿈만 같고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버려 아쉽지만 앞으로 있을 다음 여행을 위해서 열심히 또 일해야지. 돈 벌어야지. 기승전 이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