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하루 종일 방 정리를 할 수 있다.
결혼을 앞두고 동생과 방을 함께 쓰기 위해 방 정리를 하기로 했다. 뭘 잘 버리질 못하고 쌓아두고 살아왔기 때문에 불필요한 물건도 정리하는 겸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만 정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정리하기에는 몇 년간 쌓아놓은 게 너무나도 많았고 그걸 다 엎어보기에는 이 방에서 잠을 잘 수 없을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먼저, 화장대 서랍과 책상 서랍, 책장 침대 아래 서랍 중 바깥쪽만 정리하기로 했다. 사실 이 정도만 정리해도 내 방의 반이상을 정리하는 것과 다름이 없긴 하다.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말만 화장대 서랍이지 그냥 잡다한 쓰레기의 소굴이었던 서랍은 이미 굴러다니던 명함과 화장품, 전자기기 등의 말 그래도 잡다함의 정석이었다. 서랍에 있는 물건을 모조리 꺼냈다. 이미 날짜 지난 화장품 샘플과 뜯어보지도 않은 날짜 지난 새 화장품을 보면서 일단 머리를 때리고 시작했다. 도대체 화장품 없단 말을 왜 했지. 다 모아놓고 보니 화장품으로 일본의 가부키 화장이며 결혼식 때 할 신부화장도 내가 직접 가능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버리고 윗 서랍장은 남은 화장품과 화장소품들을 넣고 아랫 서랍장은 전자기기를 넣었다.
그리고 모기를 잡았다.
화장대 위를 정리하기 전에 쌓인 먼지를 닦고 화장대를 정리했다. 화장대를 제외한 방은 여전히 쓰레기 소굴이지만 화장대만큼은 사람 사는 공간 같아 보여 뿌듯했다. 이번에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이케아인지 다이소에서 산 건지 모를 간이 서랍은 따로 꺼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예 문밖으로 빼내고 총 다섯 칸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하나씩 꺼내 쏟아부었다. 회사에서 사용했던 서류부터 자격증, 지난 통장, 전 남자 친구와 관련된 것 등등 다채롭게 쏟아져 나왔다. 흠칫해서 버린 전 남자 친구 사진부터 시작해서 여기서 버린 것만 종량제 봉투 20L 중 2/3가 넘었다.
그리고 모기를 잡았다.
중간에 점심을 간단하게 먹은 거 외에는 먹은 게 없었지만 움직임 없이 계속 바닥에 앉아 잠시 일어났다 앉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에 허리가 아파오고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정리를 멈추고 학원에서 낙서한 흔적을 보고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한 뒤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책장이었다. 지난 전공 책부터 자격증 문제집까지 작은 책장이었지만 꽉꽉 들어찬 책장에서 더 이상 나에게 불필요한 책을 꺼내 내놨다. 컴퓨터 입문 책과 이미 합격한 자격증 책, 그리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공책 등을 다 버리고 나니 네 칸짜리 책장 중 두 칸이 비었다.
그리고 모기를 잡았다.
글로는 간단하게 쓰였던 정리 과정이지만 장장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덟 시까지 방 정리를 했다. 그러면서 최대 2015년도 화장품도 찾았으며 최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이어폰도 되찾았다. 돈은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다. 원래 방 정리 하면서 만원 짜리는 심심찮게 발견하곤 한다는데 나는 고작 천 원짜리 한 장 오백 원짜리 세 개 백 원, 오십 원짜리들만 발견됐다. 나도 어지간히 돈을 안 숨기는가 보다.
중간중간 예전 추억들도 되짚어보면서 나름 즐거운 방 정리를 마쳤다. 목적은 결혼 전 짐을 줄이는 거였지만 과정은 추억여행이었고 결론은 모기잡기였어도 유익한 하루였다. 아직 다 정리하지 못했으니 아직 찾지 보지 못한 서랍 안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하긴 하다.
** 찾은 머리끈으로 레게머리를 땋을 수 있을 거 같았다.
** 찾은 샘플 화장품으로 세계 여행이 가능했다.
** 찾은 필기구로 문구점을 열 수 있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