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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Nov 21. 2024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농업정신!!

신경숙 작가를 참 좋아했다.

그녀의 외딴방과 겨울우화는 세계문학만 좋아하던 내게 한국문학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 내가 모르고 있었던 한국 역사를 알게 되었고, 작중 인물들을 통해 시대적으로 고된 인간군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나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었고, 세상을 보는 눈이 확장되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 외에도 위아래로 상당히 다양한 계급과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20대의 나는 기필코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언제나 부러웠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걸까, 어쩜 이렇게 표현을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처럼 글을 쓸 수가 있을까?

그저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던 그녀를 나는 사랑하면서 질투했다. (내가 질투라도 할 레벨이 되는가)

나는 그렇게 쓸 수 없음에 괜한 화풀이는 글을 잘 쓰는 그녀를 향했다.


외딴방에서 신경숙은 되풀이해 묻는다.

자신에게 문학이란, 글쓰기란 무엇일까 하고....

나도 끊임없이 나에게 묻는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글을 오랫동안 써 온 건 아니지만 언제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학창 시절 글짓기 대회 수상 경험도 없고, 심지어 백일장 같은 데에 참가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꾸준하게 늘 매일 일기를 쓰고 있었다.

에세이란 자고로 일기에서 비롯되는 것일 텐데 나는 말 그대로의 일기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몇 십 년을 꼬박 쓴 일기장을 들춰보기는 부끄럽고 오그라들고 아무 소용없는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몇 박스나 되는 나의 일기장을 전부 모아 내가 시집을 갈 때 나에게 전해주었을 때, 나는 그 박스들을 아무런 미련 없이 전부 태워버렸다.

잊고 싶은 과거라서? 별로 행복한 기억이 없어서? 그랬을까?

나는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을까? 아니다. 나는 충분히 행복했고, 부족함이 없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미련이 없었을까?

그것은 단지 글도 아니고 뭣도 아닌 낙서 같은 일기였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워버려도 그만인 쓸데없는 낙서들. 

하지만 그 낙서들 속에는 분명 내가 존재했을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까마득해지는 기억을 그 일기장들이 잡아두었을 텐데.. 가끔은 후회한다. 거기엔 뭐가 적혔을까...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기는 매일 쓰지 않았지만, 언제나 내게 시간이 생기면 밀린 숙제를 하듯 밀린 일기로 채워 넣곤 했었는데... 거기엔 어떤 내용들이 있었을까.


글을 쓰기 위해선 나의 생에 대한 많은 기억들이 필요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나의 기억들과 일기들은 이제 나를 태어나면서부터 40대였던 것처럼 그 전의 기억들을 쓸고 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쓰고 싶었던 글들이 한때 수없이 많아서 오히려 글을 못썼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뭐가 그리 쓸 것이 많았는지조차 아득하다.

자기 계발서 같은 글, 에세이지만 지지하게 내 삶을 늘어놓은 글. 그런 글들은 쓰고 싶지 않다.

나도 신경숙 같은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신경숙 같은 글이 어떤 글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슬픔이 덕지덕지 붙어 청승에 가깝지만 멋진 문장들도 청승으로 꼭꼭 싸맨 글?

덤덤하듯 이야기하지만 억누르는 슬픔들? 

아... 모르겠다. 그저 읽을 때는 감탄을 연발했건만 그녀의 글이 어떤 글인지조차 정의할 수 없다.


아름다운 문장에 기교를 더한다고 멋진 문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경숙의 문장에는 그런 기교가 없다. 다만 내면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미화시켜 드러내기도 하는 그 조합의 스킬. 마치 물에 풀린 물감들이 춤을 추며 다른 색들을 탐하며 한데 섞이는 것처럼. 그래서 그 맑았던 물을 하나의 색으로 삼켜버리는 것처럼.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 김 훈 작가도 김종원 작가도 그렇게 오랫동안 하염없이 들여다보면 보인다는 그것.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정성을 들여 자세히 들여다보고 쉬이 지나치지 않은 마음의 태도를 먼저 장착해야 한다.

뭐가 급해서 휘리릭 대충보고 대충 쓰려고 하는 이 마음부터 고쳐먹어야 한다.

글은 농업이다. 기술적인 혁명이 필요하지 않은, 오롯이 내가 일구어내야 하는 한 마지기의 땅이다.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고 견디며,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처럼 두 발을 힘차게 딛고 서서 마주해야 할 모든 것을 만나야 하는 그런 농업정신으로 써 내려가야 한다.

언제나 풍년일 수 없고, 언제나 흉년일 수 없음에도 농사는 계속되듯, 내 글이 언제나 호감일 수 없고 또 언제나 쓰레기일 수도 없으니 계속 쓰는 것, 천천히 쓰는 것, 쓰고 또 쓰는 것. 그리하다 보면 신경숙 작가의 뒤꿈치만큼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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