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손이라도 빌려보렵니다
'모내기할 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라는 속담을 아시는지. 농사만큼 인간을 고되게 하는 게 있다면 나는 단언하건대 육아라고 하겠다. 말 그대로 독박 육아, 시댁도 친정도 저기 저 대한민국 지도 끝이었던 내가 타지에서 갓난아이를 육아하며 기댄 곳은 고양이 손뿐이었다.
내가 아기를 품에 안고 집에 온 날은 12월 중순의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매서운 겨울 찬기운이 조금이라도 들라 아기를 솜이불처럼 두꺼운 겉싸개에 폭 싸서 집으로 왔다. 솜뭉치를 집안에 내려놓자 호기심쟁이 삼냥이들이 살그머니 다가와 쳐다보았다. 그 안에 뭐가 있어? 아이쿠! 뭐가 움직인다. 못 볼걸 본 얼굴들. "사람이 작아졌다!" 세상 처음 본 광경에 당황한 고양이들은 한동안 이것의 정체를 알아내느라 경계태세였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아기가 왔다고 세상이 개벽했다. 제일 좋아하던 창가의 캣타워는 방구석으로 좌천되고, 집안 곳곳에 놓았던 물그릇도 선반 위로, 화장실 리터 박스들은 추운 베란다로, 무엇보다 제일 좋아하던 엄마 무릎엔 항상 아기가 놓여있게 돼버렸다. 게다가 이 녀석이 하루 종일 울고 보채는 통에 잠을 자다가도 화들짝 놀라는 일이 빈번했다. 이 작은 사람아! 넌 잠도 안 자니?
뒷방 신세도 서러운데 엄마는 삼냥이를 본척만척 아기 수발만 하고 있으니 어이가 상실한다. '나 캔 따줄 시간 지났거든?' 도대체 뭣이 그리 귀한 존재길래 엄마가 애지중지 하는 거야? 저 애에게서 공짜 츄르라도 나오는 거야?
미안하게도 너희 고양이들에게 상의도 없이 새 식구가 늘어나버렸다. 서운한 맘 모르지 않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내 몸은 하나요, 할 일은 태산이라 한동안 때 맞춰 낚싯대 한 번 흔들어 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고양이들이 육아에 도움을 줬다면 믿으시려나?
고양이는 지친 엄마에게 위로가 된다. 이것이 1번. 최고의 장점이다. 육아하는 자에게 하루는 지지부진한 길고 지치는 여정이다. 집은 고요와 소동이 교차하며 폭풍 속의 배처럼 뒤집히기를 반복하고, 그 안에서 여기 이 초보 엄마는 배 안의 유일한 선원이다. 한밤 중 수유에 허둥대면서도 어찌어찌 해내는 나에게 고양이들이 슬며시 다가와 등을 댄다. 요런, 내 보드라운 털 뭉치들. 이럴 때면 스스로 밥도 먹고 똥도 누는 너희 고양이란 존재가 기특하기까지 하다. 이 순간 갓난애 울음소리에도 잠만 자는 남편보다 더 커다란 위안을 준다. 어쩜 저리 달게 잘까? 아기 울음소리는 왜 엄마에게만 잘 들리는지 억울하다. 아, 여기 아기 울음소리에 깬 분들이 또 있다. 이 고요한 새벽, 나 홀로 깨어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고양이는 엄마의 멘탈수호자이다.
두 번째, 고양이는 아기의 시선을 강탈한다. 엄마들이 아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육아템을 사들이는지 모르면 말을 말자. 고양이의 움직임은 아기가 예상하기 어려운 패턴이고 그래서 더 흥미롭다. 꼬리만 흔들어줘도 뒤집어 질듯 웃을 때 엄마는 열 장난감이 안 부러워지며 잠시나마 숨을 돌린다.
고양이는 바닥과 선반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아기의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한다. 닿을 듯 말듯 애태우며 누워만 있는 아기의 도전정신을 키운달까? 이쯤 되면 아기전용 트레이너라도 해도 될까? 그 정도는 비약인 것 같으니 운동능력 향상에 아주 조금 도움을 준다고 해두자.
고양이 용품들은 또 얼마나 흥미로운가. 방울소리 낚싯대는 비단 고양이만 잡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고양이가 먹을 땐 까득까득 소리가 나는 맛나 보이는 사료들과 한 손에 딱 쥐기 좋은 츄르 봉투도 아기에겐 관찰대상이었다. 그들의 물그릇은 언제나 물이 있어 첨벙 대기에 좋고, 낮잠을 잘 때 다가오는 고양이는 촉감 인형보다 따듯하고 부드럽다. 힘든 하루 중 고양이와 아기 사이의 해프닝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난다. 그럴땐 내가 너희를 키우는 게 아니라 너희가 나를 채워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몽글몽글하고 간지러운 사랑이 날 채운다.
마지막으로 고양이는 섬세하다. 고양이와 친해지기는 절대 쉽지 않다. 그들은 거친 스킨쉽을 싫어하고 일방적인 애정도 거부한다. 고양이의 애정을 얻으려면 은근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아기의 다듬어지지 않은 애정표현은 고양이를 달아나게 한다. 아기가 고양이에게 가까워지려면 계속해서 실패하며 노력해야만 한다. 큰소리로 소리 지르지 않으려 노력하고 조심히 쓰다듬으려 손 힘을 조절하다 보니 어느새 아기는 섬세한 고양이를 닮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동물 감수성을 갖게 된다. 아기는 자신처럼 모든 생명은 아플 줄 알고 귀하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고양이만큼 작았던 아기는 훌쩍 커버려 이제는 고양이를 잡으러 달려 다닌다. 고양이는 놀려주듯 캣타워 위로 가볍게 점프한다. "고양이는 나무에 왜 올라가?" 아기는 억울한 얼굴로 물어본다. 글쎄, 너 때문이 아닐까?
아직은 누워 있는 고양이 발치에 기대는 것만큼만 친한 사이. 고양이는 '이 정도까지만 허락할게' 라는 듯 사진을 찍자마자 자리를 벗어난다.
아기의 장난감 사이에서 고양이는 이방인처럼 낯선 풍경이다. 누군가는 아기와 고양이는 절대로 같이 키워선 안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아기를 해칠 것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한다.
아니, 유감이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