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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소안 Aug 31. 2022

아직도 사랑할 게 너무 많아요.

두 번째 편지

봉별기님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기로 약속한 일주일이 무척 빠르게 지나요. 그동안 저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하고, 유일하게 하는 운동인 필라테스를 가고, 다음 달 친구 결혼식에서 부를 축가를 연습하며 지냈어요. 최근 몇 년 중에서 가장 밀도 높게 일상을 보내는 느낌이에요. 아, 손톱에 젤네일도 발랐어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알게되는 봉별기님의 일상은 저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해요. 평일엔 새벽수영과 PT, 휴일에도 부지런히 일어나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북토크에 가시죠. 늘 감탄해요. 현역일 때 저는 부대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컸거든요. 워낙 에너지 수준이 낮아서 주중이건 주말이건 집에 있을 땐 누워있었어요. 군생활이 좋아도 피곤한 건 피곤한 거죠. 봉별기님을 그리 바쁘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시작'이라는 말,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제게 참 설레고 두려운 단어에요. 그런데 전 시작만큼이나 끝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위 전역한 여군들을 인터뷰하며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어떤 군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에요. 다른 인터뷰어였다면 가장 마지막에 할 질문이죠. 그만큼 무언가를 끝낼 결심, 헤어질 결심에 대한 얘기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전역한 상태였고 봉별기님은 마무리를 꿈꾸고 계셨죠. 서로의 군 생활 끝부분에서 만난 듯 했어요. 그리고 그날 봉별기님과 대화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군인이 된 진짜 이유를요. 봉별기님이 지난 편지에 군 생활의 시작을 얘기해 주셨듯 저도 군대와 어떻게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어떤 이유로 군인이 되었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졌어요.


저는 육군 부사관의 딸로 태어났어요. 눈 떠보니 군인아파트였고 거기서 십 년을 살았어요. 모든 친구들이 나처럼 P.X로 엄마 심부름을 가는 줄 알았고, 눈이 오면 모든 아파트가 우리 아파트처럼 군복 입은 아저씨들이 제설을 하는 줄 알았어요. 지금의 군인아파트는 여느 민간아파트만큼이나 쾌적하게 잘 지었더라구요. 약 20년 전 제가 살던 군인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딸 셋인 우리 집은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살았었어요.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운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겨울이면 우리 가족은 패딩까지 껴입고 생활했답니다. 옆집 윗집 아랫집 아빠들도 다 군인이었고 행거에 걸린 아빠의 유니폼은 전투복, 근무복, 정복 등으로 다양했어요. 출장 가신 아빠의 군복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경례를 했던 제 모습이 기억나요. 여기까지 들으면 군인의 딸이 자라 장교가 된 것이 꽤나 자연스러워 보이죠.


봉별기님은 부모님의 권유로 군인이 되었다고 하셨죠. 저는 온전히 제 바람, 제 선택이었답니다. 긴 시간동안 많이 들어서 잘 아시겠죠. 여군에게는 왜 군인이 되었느냐고 묻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마치 연예인이 된 것처럼 대답해야 하고요. 가장 큰 이유는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목격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였어요. 또 간단하게는 “아버지가 군인이세요” 그러면 다들 쉽게 납득하더라고요.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알게 됐어요.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제가 군인이 된 진짜 이유. 그건 우리 집이 ‘딸 셋’이 아니라 ‘딸만 셋’인 집이었기 때문이에요. 양가 할머니들은 장남인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어 아쉬워하셨어요. 엄마에게 넷째를 낳으라고 은근하고 꾸준하게 압박하셨죠. 비단 할머니들뿐만이 아니에요.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어요. “아들 낳으려다가 실패했다”고. 만약 우리집에 남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왜 우리는 실패작 취급을 받았을까요?


어렸을 땐 “남동생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사춘기를 지나며 “내가 아들이었어야 했는데…”를 거쳐 “다른 집 열 아들 안 부러워하게 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동안 파티쉐, 작가, 아나운서, 선생님도 되고 싶었지만 임팩트가 없었어요. 그러다 군인을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마땅히 해야 하고, 하고 있는 군복무. 까짓거 제가 왜 못 하겠나 싶었어요. 제가 아빠와 똑같은 군복을 입고 있으면 누구도 더는 아들 타령하지 않을 것 같았구요. 봉별기님이 말한 ‘국가에 충성하고 나라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거짓말은 아니어도 군인이 되고 싶은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었어요.


저는 그래요. 군에 지원하는 동기가 개인적이면 어떻고, 군복무가 스펙이 되면 좀 어때요. 어차피 충성심과 애국심은 직업정신으로 길러지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한편 남군들에게는 여군들에게만큼이나 엄격한 잣대를 대지 않고, 어이없는 질문들이 따라다니지도 않죠. 제가 장교 후보생이던 대학 3, 4학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스펙 쌓으려고 ROTC 하냐?” 였어요. 그땐 성실하게 모두에게 대답했는데, 노코멘트 해도 되는 질문이라는걸 뒤늦게 알고 후회했죠. 그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을 건데요.


군 생활이 모두 지난 지금, 시작을 돌아보니까 마음이 이상해요. 만약 다시 군복무를 할 수 있다면 더 잘하고, 더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아쉬움과 추억을 담아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군에 대한 애정으로 봐주신 듯 해요. 봉별기님과 군대가 중매로 만나 오래가는 인연이라면, 제게 군대는 지독히 앓다 끝난 짝사랑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데 저 꽤나 짝사랑에 소질 있어요. 사회에 나오니 아직도 사랑할 게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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