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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an 18. 2024

다른 사람도 나를 참아준다.

나만 보면 다른 사람 험담을 그렇게 하는 후배가 있다. 처음엔 그냥저냥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다가, 나도 모르게 험담 대상이 슬슬 미워지는 마음이 자라나더니, 결국엔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워낙 감정이입이 특기인지라 미워하는 마음까지 고스란히 느끼고 있자니 이건 아니다 싶어졌다. 그래서, 후배가 와서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일에 몰두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타이핑을 막 치고, 전화를 걸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후배의 이야기를 흘려 들었다. 그래도, 말할 사람이 나뿐인 건지, 공간적 특성상 건강관리실이 사무실에 혼자 근무하다 보니 둘이서 오붓하니 이야기 나누기 최적인 곳이라 그런지, 후배는 줄기차게 건강관리실을 들락거렸다.

결국, 스트레스 지수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 게 느껴졌다. 후배 얼굴만 봐도 짜증이 솟구치고, 저렇게 욕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내 욕은 또 얼마나 할까? 하는 의구심까지 자라나기 시작했다.

방법은 둘 중하나라고 생각했다. 후배 입을 나의 강력한 거부의사로 틀어막던가, 아니면, 내가 도인이 되어 정말 흘려듣던가.


어쩌나~~ 생각에 잠긴 채 한 손엔 커피를 들고 멍 때리며 정면을 주시하는데 그곳에 신랑이 설거지해 놓은 주방집기를 찬찬히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냄비는 서랍장에 집어넣고, 반찬통 뚜껑은 털고 다시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다시 써보겠다고 세척해 놓은 덜 마른 지퍼백을 반대로 뒤집고 있었다. 그때서야 번뜩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찬통뚜껑은 틈이 많이서 잘 건조되지 않으니 설거지하고 나서 잘 털어서 비스듬히 건조대에 올려야 하고, 지퍼백은 뒤집어서 말려야 바닥에 세워서 온전히 다 말릴 수 있다고 일러주던 신랑의 목소리가.


나만 누군가를 참고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도 나를 기꺼이 참아준다. 


속으로 키워왔던 분노와 미움, 짜증이 스르르 녹아내리더니 종적엔 고마움이 한 귀퉁이에 슬며시 자리 잡았다. 커피를 들고 있던 나의 표정도 어느새 미소가 묻어난다.

나를 속이야기도 거침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선배로 생각해 준 후배도 감사하고, 여러 번 이야기해도 귀등으로 흘리는 마누라 미워하지 않는 신랑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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