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으로 영글 여린 풀잎은 저고리 삼고
분홍 모시 꽃잎으론 치마폭을 감싼 진달래가 길 옆으로 마중 나와 반기는 기색은
오랜만에 등산길에 오른 나를 향한 것인지
때 맞힘 찾아든 봄을 맞아 그러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나
그 고운 자태에 성큼성큼 내딛던 발걸음이 자꾸만 주춤거린다.
잎사귀보다 먼저 노란 꽃잎을 드리미는 성질 급한 개나리도,
아직 늦가을인 듯, 겨울의 한 자락인 듯 등산로 주위를 가득 매운 철 지난 낙엽들 사이로
이름 모를 보라색 작은 꽃잎 하나, 세상 빛을 본 지 며칠 안된 듯한 뽀송한 양치 잎사귀 하나도
모두 이제 웅크리고 기다리던 시간은 지났다고 앞다퉈 두런거리는
봄 산행길이다.
흐드러지게 쏟아지는 벚꽃에 취하고,
소담하고 기품 있는 목련에 반하고,
투명한 햇살에 반짝이는 개울물소리에
그 자리가 명당인 양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게 봄 속을 누비고 다녔던
오랜만의 산행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이런 날도 오겠지?
끝도 없이 길어질 것만 같던 춥고, 어둡고, 칠흑 같은 나날들.
극심한 어둠에 그림자 마저 떠나버린 날이 지나고 나면
꽃도 피고, 새도 노래하고, 볕도 따뜻하고, 바람 한 줄기마저도 부드러워질 이런 날이 찾아오겠지.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력을 다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몸부림.
숨죽인 연마.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 기다린다.
봄날이 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