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가장 흔한 말이 ‘그래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 같이 주어졌다’라는 말이다. 과연 최소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의롭게 부여 된 것일까.
부의 수준에 따라서 똑 같은 개인시간 소모에 있어서도 추가 여유분의 시간소유 격차가 클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대신해 집안 청소가 되어 있거나, 요리가 준비되어 있는 상대와 모든 것을 직접 실행해야 하는 사람과의 차이가 큰 것처럼 말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정권의 핵심 과제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주 69시간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현장 노동자로 22년을 일하며 연장 근무와 추가 휴식권 보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수차례 경험해봤다.
2012년 8월 말 태풍 볼라벤이 오후 12시에서 1시 사이에 우리나라 서쪽을 지나가며 큰 피해를 안길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태풍 상륙 당일 오후 1시 50분 출발 예정이었던 암스테르담행 비행의 출발 시간을 3시간 앞당긴 9시 50분으로 하겠다는 회사의 지시에 이른 출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항공사의 비행편이 동시에 앞당기다 보니 활주로에는 긴 대기 열이 생겼고 결국 여러 우여 곡절로 내가 근무했던 비행편은 인천 공항에서 8시간 40분을 추가로 대기하다 겨우 이륙을 하였다. 통상 암스테르담까지의 비행시간이 10시간 내외이고, 비행 준비를 위해 적어도 집에서 출발시간 4시간 전에는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24시간 연장 근무를 한 셈이다.
하지만, 이 육신을 갈아 넣는 추가 및 연속 근무는 기장들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았다. 기장들에 대해서는 항공법에 의한 연속 근무 시간에 대한 규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이를 어겼을 때 가해지는 강력한 규제와 불이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 출발 대기 시간이 4시간을 초과하자 법에 의해 대체 인력으로 근무 교대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무런 규정이 없던 객실승무원에게는 교체는 커녕 그 어떤 합당한 보상이나 휴식 시간이 추가되지 않았다.
당시 표면상 승무원의 월 비행시간을 100시간 이내로 규정하고 있었고, 최소 업무 인력 규정에 부족한 인원으로 근무를 실시했을 때 보상 휴식 시간 부여 그리고 연장 근무로 인한 업무 시간 초과에 대한 보상 휴일 부가 등의 규정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허울 좋은 법 한켠에 적혀있는 문구 하나가 이모든 규정을 사실상의 면죄부가 된다. 그것은 ‘회사의 사정에 의해 불가피할 때’라는 예외 조항이었다.
정권의 69시간근무 혜택으로 더 긴 연속시간과 집중 휴식 시간이 가능하다는 말에 공감이 불가하다. 이미 직장인의 80프로 정도가 현재 연차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 이 무법지대 노동 착취법이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아울러 이 과제의 가장 큰 지지내지는 필요성 요구 계층이 미래 세대인 MZ세대의 강력한 요구에 있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과연 우리사회의 노동자가 특정 연령대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정부는 현재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이미 규정하고 있는 연월차를 비롯한 노동자 휴식 시간 보장에 대해 먼저 엄격한 조사와 감시 그리고 제도 정착을 위한 노력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자본의 노동자 착취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행동 대장 노릇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양질의 일자리를 자본권력들이 만들기 위해 경쟁에 나서도록 만드는 것에 있음을 알기 바란다.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 중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