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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나도 ‘빨갱이’ 인가?

과연 과거의 한 시점에 있었던 단편적 일이 개인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얼마 전 육군 사관학교가 육사 충무관 앞에 설립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비롯해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을 모두 철거 및 이전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이전 필요성의 이유로 특히 홍범도 장군과 관련해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국방부 그리고 육사는 과거 일제 강점기 소련 공산당에 가입 했던 전력이 문제삼고 있다.

 

문득 이런 논리와 기준으로 개별 시민의 삶을 재단한다면 과연 그 어느 누가 맞춤형 검열이라는 그물망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항공사에 근무하던 시절 여러 대외 활동을 전담하는 승무원 역할을 수행했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6.15 평양 방문을 앞두고 다른 수행 비행 때 보다 훨씬 엄격한 사전 교육과 여러 보안 절차가 진행되었었다. 북한 방문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평양행 비행을 6개월정도 앞둔 시점부터 호적등본이나 가족관계 증명서등 여러 개인 정보 열람에 필요한 서류를 안기부가 요청해왔다. 그렇게 절차가 진행되던 중 평양 방문 두 달을 앞두고, 전화 한통을 받았다. 가족력 전반을 검증하다가 존재 사실도 몰랐던 8촌 정도의 먼 친척이 해방이후 북한으로 넘어간 이력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으로 나만 평양행 비행에서 제외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최종적으로 먼 과거의 일이고,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니라 결론이 나서, 평양행 비행에는 동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과 여러 행정수반 권력자들이 말하는 이념 규정 논리를 적용한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난 어떤 상황에 의해 평양행 비행기에는 절대 탑승 할 수 없는 ‘빨갱이’ 혹은 ‘반국가 세력’이 될지도 모른다.

 

과연 과거 어느 지점에 나도 모르게 일어났던 일로 공산당 추종자나, 빨갱이로 규정되어 질수 있을까. 작고하신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고, 현재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시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한 친척의 이력이 빌미가 되어, 전쟁에서 세운 공과 국가를 위해 행한 헌신에 대한 가치는 사라지고 친북 인사로 규정되어지고, 국립묘지에 어울리는 않는 인물로 분류되어 순장된 묘를 파헤치고 강제 이장을 집행해도 마땅할까.

 

미국에서 출판된 재일 동포들의 아픈 역사를 다룬 소설 파친코를 바탕으로 만든 애플티비 드라마 마지막 회에 각자의 사정에 의해 일본에 남아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상태로 험난한 시절을 견디며 살아내야 했던 수 많은 노인들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엄혹한 일제 강점기 약 200만명의 조선인이 위안부나 강제노역등의 여러 이유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며 다수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그중 약 20만명 가까운 각자의 사정에 의해 그곳에 남아서 삶을 이어가야만 했던 역사 아픈 역사가 있다. 일부를 제외하고 그들 대부분의 선택은 이념적 선명성에 기인한 것도 투철한 신념 실행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현재의 이념 선명성을 기준으로 당시 일본에 남아 살아온 모든 조선인들을 일본에 부역한 자들이라고 쉽게 단정해도 될까.

 

다양성을 무시하고, 개별 존재 가치에 대한 존중이 없는 낡은 색깔론으로 사람과 집단을 가르고, 더 거룩한 신념을 지킨다는 핑계로 차별을 합리화하고 상대 숙청이 정당화 되는 오염된 사상 신봉과 이념적 우월주의가 다시 태동하는 역사적 역행은 없어야 한다. 다면적 고려나 깊이 있고 다양한 정보가 바탕이 되지 못한 역사 판단은 쉽게 한 사안을 단순 악으로 둔갑 시킬 수 있다.

 

그래서 역사적 평가라는 것에는 수많은 합의와 이해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한때 A라고 정의되었던 역사의 일이 어느 시점에서는 전혀 다른 B로 규정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여러 숙고의 과정과 합의가 진행된 결과일 것이다.

 

현재 일어나는 이념논란에 화가 나고 두려워 진다.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분쟁이고, 어떤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싸움인가.

 

긴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시민들은 수많은 보통 시민들은 다양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비로소 엔데믹을 맞이하며 기뻐할 사이도 없이, 팬데믹 기간이 빚어낸 후가는 많은 약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암울한 경제 지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이 곧 닥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힘과 권한을 넘치게 가진 이들이 본인들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때아닌 이념 싸움판만을 벌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 큰힘을 다수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치열하게 써주기를 바란다. 또, 그런 정의로운 싸움에 나설 때 아낌없는 환호와 응원이 뒤따를 것임을 분명히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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