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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불시착

국가 불시착


뉴스토마토 시론 : 박창진


생사가 오갈 수 있었던 항공기 사고를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항공기 엔진이 전소되어 소위 말하는 불시착을 겪은 일이다. 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어느 해 모스크바행 비행을 하던 날이었다. 보통 비행기가 이륙하고 10분에서 15분이 지나면 항공기가 안정 고도에 이르게 되고 비로소 비행기 내부에서의 움직임이 가능하게 된다. 이때부터 승무원은 빠른 업무에 도입하게 되는데, 기내 식사 등의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날 기장의 안전고도 진입 신호가 있고 나서 분주히 맡은 일들을 진행하고 있을 때 한 승무원이 보고를 해 왔다. ‘부사무장님 비상구 앞 좌석 분이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확인 좀 하라는데요.’ 다급히 가서 보니 정말 통상의 비행기 소음과 다른 굉음이 있었다. 다급히 기장에게 연락해 상황을 알리자, ‘이상한 소음이 확실해요? 항공기 계기판에는 아무 이상 없는데’ 퉁명스러운 말속에는 귀찮음과 내가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닌 거야 하는 식의 권위적 의식도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두세 시간이 지났을 때 부기장이 굉음이 나는 비상구를 기웃거리다 당황한 표정을 보인다. 사실을 알고 보니, 승객이 말한 이상한 소음보고 당시 이미 왼쪽 엔진 하나에 이상이 있었고, 지금은 엔진의 일부가 타서 작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여러 협의를 통해 결국 한쪽 엔진만 가동한 채 목적지로 운항은 계속 비행하게 되었다. 다행히 더 이상의 피해는 없이 모스크바 공항에 비상착륙을 했으나, 그 일은 내 평생 잊지 못하는 사건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항공여행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비행기가 운항하는 하늘이라는 공간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 나 홀로인 격으로 그 어디로부터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항공기 운항 전에는 많은 수고가 있다. 비행이 시작되기 전부터 수많은 위기 변수들에 대비와 점검이 이루어진다. 정비사들에 의한 항공기 점검은 날개 끝에서 부터 조종석의 전자 장비 그리고 항공기 내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거의 항공기 구성품 모두를 사전 점검하게 되어있다. 또 청소직원, 항공기 탑승 승무원에 의해 이 절차는 겹겹이 중복되어 실시된다. 하지만 이런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걸치더라도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날 내가 했던 모스크바 비행에서도 이런 위기의 경고와 이에 대한 대처 그리고 방치 등의 여러 상황이 중첩되어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나마 조금 늦은 상황인식이었지만, 그에 대한 대처가 있었기에 현재 나는 생존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사회 속에도 위기의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참담함을 넘어 비극으로 가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그때마다의 경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최악의 참담함을 최소화 시키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요즘 우리 국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접하며, 불시착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죽음, 일상을 생활하는 다수가 길거리에서 죽어간 참사,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여러 인명이 사상된 참혹한 일에 대한 뉴스가 마치 더 큰 불행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경고를 울리고 있는 듯하다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폭발 직전의 분노 사회가 되지 않았나싶다. 그 원인이 된 본질의 문제들이 등장하고 그 파장이 불러올 문제들에 대한 경고가 지속적으로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해 온 방관이 응축되어 이제 그 안에 에너지를 가두어 둘 수 없게 되었고, 밖으로 응집된 에너지를 분출해내어야만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대 소멸 직전 폭발 같은 상황 말이다.

 

계층 고착화, 대를 이어 계층이 세습되는 사회, 경제적 양극화 심화, 계층 이동 사다리마저 사라진 사회, 기득권 카르텔이 더 견고해진 사회,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회의 절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밖으로 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억압된 사회일수록 그 절망의 에너지는 더 강하게 응축되게 된다.

 

정치, 행정, 언론 등 우리 사회의 흐름을 만들어낼 거대한 권력들이 스스로 각성하기를 기대하기에는 이미 늦었는지 모른다. 다만 희망이 있다면, 수많은 경고의 순간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개별 구성원들 스스로이다. 권력을 행하는 조직과 사람을 잘 선택하고 그들의 행동을 제대로 견제하며 감시해야 한다. 우리의 권력에 대한 방관이 만들어낼 분노 응집의 결과가 그 원인을 해결하는 일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주

사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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