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과 허점이 허용됩니다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자신있게 'OO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취미란 업이 아닌 것에서 진득하게 좋아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 내려왔다. 문제는 '진득하게'였다. 이거저거 조금씩 시도해보고 말아버리는, 소위 말해 '찍먹 부자'인 나는 뭘 하나 끈질기게 하지를 못 했다. 호기심 천국, 호천 선생이다보니 관심 분야는 늘 많았고, 관심이 생기면 행동했다. 그 결과 운동은 요가, 필라테스, 수영, 러닝, 등산, 헬스, 밸리댄스, 악기는 피아노, 플룻, 기타, 드럼, 외국어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그 외 캘리그라피, 식물 키우기, 베이킹, 꽃꽂이, 컬러링, 방송댄스, 와인 배우기,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까지. 그러고보니 요리 학원도 다녔었다.
그런데 진득하게 하지를 못 했다. 취미는 누가 돈 주고 살 만큼의 퀄리티를 만들어야하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음에도 나는 잘 해야했다. 빠른 성장세가 안 보이면 계속 하기 힘들었다. 남들보다 잘 할 거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노력 끝에 못 하는 나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먹고 사는 업에서 그리 스트레스 받았으면 됐지, 업에서 받은 스트레스 풀려는 취미에서조차 잘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눌려살았다. '취미인데 좀 못 하면 어때?'라는 말은 그리 와닿지 않았다. 비교와 완벽주의가 뼛 속 깊이 장착되어있는 나에게 일이든 취미든, 못 하는 건 하다가 그만두느니만 못 했다. 스트레스 풀려다 오히려 스트레스 받는 꼴이 되어버리니 진득하게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취미에서 의미도 찾으려 했다. 악기 배워서 오케스트라나 밴드 들어갈 거 아니면 배워서 뭐 하지? 캘리그라피 배워서 갖다가 팔 것도 아닌데 해서 뭐 하지? 밸리댄스 배워서 공연할 것도 아닌데 배워서 뭐 하지? 이런 생각이 들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취미는 누가 평가해서 인정해주는 구조가 아닌데다가, 같은 걸 계속 반복하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조금 하다보면, '그런데 이거 해서 뭐 해?'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취미는 어디다가 뭐 하려고 하는 게 아님에도, 나의 뇌 구조에서는 취미마저도 의미를 찾으려 했다.
취미는 기대나 계산이 없어야 진득하게 할 수 있다. 결과와 의미가 아니라, 과정에서의 즐거움과 몰입감에 초점을 둘 때 비로소 진득함이 생긴다. 그래서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시도는 '엉성이 되기'다. 빈틈 있고 허점 많고 헐렁하기 그지 없게, 엉성하게 하기. 그런데 또 여기에서 문제는 이거다. 엉성하게는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못 하는데 과연 재미가 느껴질지 내 뇌 구조 속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하지만 일단 시도해본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확성, 속도, 효율을 중시하며 살아왔고, 한 치의 느슨함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현재의 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늘 긴장하며 사는 삶이었다. 적어도 취미에서만큼은 회초리 들고 앙칼지게 나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과거와 달리 느슨하고 여유있게 살고 싶은 마음만은 진심이니, 엉성한 취미 생활하기를 서툴게 시도해보려 한다. 잘 될지는 진짜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일종의 선언문처럼 적어놓고 공표해놓으면 '엉성이'에 좀 더 다가가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