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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l 26. 2022

골굴사, 꿈꾸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경주 골굴사

문무대왕 수중릉을 참배하고 다시 경주시내 방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감은사지를 스치듯 돌아보았습니다. 폐사지 여행은 아직까지 저에게 어려움이 많습니다. 자꾸자꾸 보게 되면 관심 갖게 되고, 그러면 사랑하게 되고, 마지막엔 알게 되겠지만 말이죠.


제가 보기에 감은사지는 다른 폐사지보다 훨씬, 규모 면에서, 작습니다. 한눈에 금당 자리와 두기의 탑, 회랑 자리 등이 다 들어옵니다. 예전에 보았던 성주사지, 회암사지, 선림원터 등등과 비교해보면, (비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감은사는 문무대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즉위해 완성한 사찰입니다. 원래 절 이름은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진국사(鎭國寺)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문왕이 아버지의 호국충정에 감사하는 뜻으로 감은사(感恩寺)로 고쳐 불렀다고 전하지요.


감은사지를 지나 경주시내로 가던 중, 골굴사 이정표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빠 꿈을 묻는 아이!



골굴사? 생전 처음 듣는 절 이름입니다. 만약 이정표에 보물 581호로 지정된 마애아미타불이 있다는 얘기만 없었어도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그런 절입니다. 하지만 이 절이 그래도 선무도로 꽤 유명한 곳인가 봅니다. 옛날 화랑들이 수련하던 심신 수련법인 선무도의 총본산이 바로 이곳이라고 합니다.


일주문을 통과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집을 둘러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이는 바닷가에서 주운 나무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 땅을 꼭꼭 찌르며 제 뒤를 쫓아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계속 이어진 언덕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조금 숨이 차오를 때쯤 멀리 깎아지른 벼랑에 새겨진 마애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애아미타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희 목적지는 마애아미타불입니다. 깎아지른 절벽 제일 꼭대기에 모셔진 마애불이지요. 보물581호로 지정된 웃음이 매력적인 불상입니다.


“아빤 꿈이 뭐야?”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던 아이가 제 손을 잡더니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아빤 꿈이 뭐냐고 말이죠. 정말 그 난데없는 질문에 전 순간 당황했습니다. 저에겐 특별히 생각해온 꿈이 없었거든요. 아니, 저도 꿈을 꿀 수 있는지, 꿔도 되는지 순간적으로 모든 생각이 딱 멈춰버렸습니다.


“난 꿈이 요리사야”


전 아이의 계속되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묵묵히 들었습니다. 길은 곧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헉헉’ 내쉬는 숨 사이로 쉴 새 없이 말을 재잘재잘 잇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식을 할지, 중식을 할지, 양식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얘기와 요리사가 되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합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가 말하는 데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네 꿈을 계속 키워나가라고,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말하며 등을 두드려주기만 하였습니다.


신중단. 불법을 옹호하는 신들을 모신 단을 말합니다.
산신단. 산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호신이죠. 산을 지키는 수호신.
지장굴. 지장보살이 모셔진 굴. 지장보살은 죄에 빠진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뜻을 가진 보살입니다.
약사굴. 약사여래를 모신 굴.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이시죠.
먼저 간 아이들이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고, 어른들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아이와 얘기를 하여 걷는 사이, 정말 노약자는 이곳을 오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밑 계단에 ‘노약자는 이곳에서 예불하라’는 말이 쓰여있던데, 이제야 그 말뜻이 이해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정상을 향해 올랐습니다. 아이는 굵은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는 걸 재밌어했지만 밑을 보니 아찔합니다. 너무 어린애들을 데리고 오르면 위험합니다.


골굴사 마애아미타불. 보물581호로 지정되어있고. 9세기 신라불상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리 높은 곳은 아니지만 은근히 힘이 드네요. 마치 일상에서 찌든 더러운 노폐물을 다 버리고 가라는 부처의 배려 같습니다. 그렇게 바위산을 오른 지, 십 여분 만에 마침내 정상에 서 있는 마애아미타불을 만났습니다.


안내문에는 마애아미타불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높다란 상투 모양의 머리와 뚜렷한 얼굴, 가는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의 독특한 이목구비와 얼굴 전체에 웃음을 띤 형태 등은 형식화가 진행된 9세기 신라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건장하지만 평면화된 신체, 얇게 빚은 듯 계단식으로 평행되게 한 옷 주름, 무릎에서 형식적으로 나타낸 물결모양의 옷 주름과 겨드랑이 사이에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기림사적기’에는 골굴암에 열두 굴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불상은 그 주불인 듯하며 만든 시기는 9세기경으로 보인다.”


아이가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저희 부부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아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을 것이고, 아내는 미용강사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소원을 빌었겠지요.


저는 ‘저도 꿈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지금 새로운 꿈을 꿔도 늦지 않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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