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드 Sep 13. 2022

제부도, 인간이 기생하는 바다

제부도 입구

아침 8시 30분. 저희 차는 제부도 물길에 서있습니다. 일찍 섬을 빠져나오는 차와 이제 들어가려는 차가 마치, 밤새 임무를 마친 누군가와 교대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물 때는 오전 11시에 닫혀서 오후 3시에 열립니다. 말하자면 저희는 잠시 동안 섬에 갇히게 되는 것이지요. 일행과 함께 제부도 물길을 달립니다.




이번엔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텐트와 간이 테이블, 아이스박스와 도시락, 흐린 날씨지만 오늘 하루 모처럼 가까운 곳에서 푹 쉬다 가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해변에 텐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바닷물은 이미 해안 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갯벌이 좁아지고 있단 얘기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재빨리 조개 잡으러 나가봅니다. 하지만 물이 너무 들어와서 갯벌은 점차 사라져 버리고 사람들은 바닷물에 밀려 해안으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저희는 매바위 근처 바위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아직 물이 차지 않았습니다. 조개 캐던 사람들이 모두 그곳으로 몰려왔습니다. 


매바위 근처에는 따개비가 많이 있습니다. 이 놈은 갯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어패류의 일종이지요. 바위나 물속의 나뭇가지에 무리 지어 붙어서 유기물이나 미생물들을 먹고 삽니다. 소라껍데기 비슷한 것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게 바로 따개비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조그만 굴도, 사방에 가득 보입니다. 물론 빈 껍질이 더 많았지만 자세히 살피다 보면 알이 들어있는 굴도 찾을 수 있답니다. 


저는 얼른 소주 한 병들고 달려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굴을 캐고 저와 지인은 한잔 했습니다.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부러워합니다. 오전부터 술을 먹기는 처음입니다. 바다가 저를 취하게 하는군요. 


열심히 놀고 있으니 어느새 바위도 물에 잠겨갑니다. 옆에 있는 매바위에는 낚시꾼들이 몰려있습니다. 그 들은 일부러 그곳에서 나오지 않고 낚시를 합니다. 그래야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하더군요. 



매바위

물이 들어오니 바람이 걷잡을 수 없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온 터라 일행들은 춥다고 텐트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는 간이 의자에 앉아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 가족들이 해변에서 뛰어다니는 모습,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자리를 펴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등. 


제부도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쉴 자리를 마련해 주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만 할 뿐 바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사람은 바다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지요. 


점심을 먹고 물이 빠지길 기다리며 짐을 주섬주섬 챙깁니다. 저희가 가져온 쓰레기는 모두 다시 종이박스에 집어넣습니다. 


바다에 기생하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흔적 없이 사라져 주는 것뿐이군요.


물 때와 상관없이 제부도와 전곡항을 이어주는 케이블카

섬이 이제 물길을 열어 줍니다. 제부도 빠져나가는 입구에는 케이블카가 쉴 새 없이 전곡항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릅니다.


섬은 섬 나름의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젠 그렇지 못한 게 좀 아쉽군요. 하지만....



하늘은 인공이 내 준 길이 있어 언제든 드나들 수 있지만, 자연의 허락이 필요한 물 길이 있어, 아직 제부도는 그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발, 다리는 놓아지지 않길 바라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감은사지, 느티나무! 이제 편히 쉬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