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눈이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에도 불구하고 동찬은 짐을 꾸렸습니다. 눈 때문에 차가 막히면 그냥 돌아올 각오로 말이죠. 사실 이쯤이면, 봄을 맞으러 남녘으로 가는 게 맞지만, 올해는 마지막 겨울 풍경을 가슴에 꼭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 일뿐, 강원도에는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추적추적 봄비가 말이죠.
고성에 도착하면서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새로 구입한 차는, 제 맘대로 와이퍼를 신나게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동으로 비가 내리는 속도에 맞춰 와이퍼가 움직이나 봅니다.
앞자리에 앉은 아이는 와이퍼가 이리저리 제 맘대로 속도 조절을 하는 게 재밌나 봅니다. 하지만, 운전하던 그의 아내는 뭔가를 조정하더니, 정신없다며 자동 조정 기능을 꺼버렸습니다.
재밌는 볼거리가 없어진 아이는, 이내 검은빛의 바다를 응시합니다. 오늘은 꼭 태풍이 오기 전 바다 같습니다. 하늘도 검고, 바다도 검고, 산도들도 다 검은색입니다.
화진포에 접어들 때쯤, 하늘은 더 어두워졌습니다. 동찬의 아내는 이런 날이면, 울릉도에 보름동안 갇혀 지내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진절머리가 난다고 합니다.
그때 바다와 파도는 자신을 집어삼킬 듯 크고 무서웠다고 말이죠.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배가 뜨질 못하니, 그렇게 보름을 울릉도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 이승만 별장 등의 이정표를 무시하고, 호수를 따라 돌았습니다. 화진포는 그 둘레가 무려 16Km에 달하는 동해안에서 제일 큰 호수라고 하네요. 이곳도 이제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물이 봄비에 조금씩 녹고 있으니까요.
해수욕장이 있는 곳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비만 안 내리면, 당장이라고 바닷가에 서보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겠네요. 할 수 없이 비가 와도 상관이 없는 해양박물관 구경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화진포해양박물관’은 사실, 그가 여러 번 왔던 곳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곳을 좋아하지요. 둘째 아이에게 여러 가지 예쁜 물고기를 보여줄 겸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쓸쓸함이 감도는 화진포에서 그는, 여러 가지 상념에 휩싸였습니다. 어쩐지 이곳에서는 그래도 될 것 같아서 말이죠.
전 날, 그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우정을 나눈 친구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그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초반엔 잘 되던 사업이 휘청거리더니, 이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주저앉지 않았죠. 다시 새로 시작하고, 또 실패하고. 그리고 지금,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패가 두려운 게 아니야! 난 다시 일어날 용기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지!"
그의 친구는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있습니다. 그는 그런 친구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포기하지 않는 친구가, 기적처럼 우뚝 서길 기원해 봅니다.
"내가 쓰러졌을 때, 나를 잡아준 단 한 사람의 손이, 다시 일어날 용기를 줬어!"
친구의 얘기를 가슴에 담아 봅니다. 지금 주위를 둘러보세요. 혹시 당신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
호수 얼음이 다 녹으면, 이젠 기다리던 봄입니다. 지금 혹한 겨울을 지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계절이 오는 것이죠. 봄이 오기 전, 겨울은 반드시 거쳐야 할 자연의 섭리죠.
그러므로, 봄은 반드시 옵니다.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