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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Feb 03. 2024

내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니?

#1. 동생과의 재회

2023년 1월과 3월, 두 차례 내게 찾아왔던 엄마 때문에 한동안 정신을 놓고 길에 주저앉아 울기만 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무엇이 나를 위한 일인지 생각하다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며 피해자보호명령을 신청했었다.


학대 피해 신고는 피해 마지막 날 기준으로 7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효력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상은 내 편이 아니구나 또다시 버려지는 기분에 고통스러워하다 피해자보호명령을 신청했다. 112에 신고했던 내역은 1년이 지나면 모두 삭제되고 증거로 제출할 수 있는 서류는 따로 없어서 골치를 썩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초수급을 신청하겠다며 받았던 정신과 진단서가 있었는데 병원에서 재발급은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 좌절하다 제출했던 구청이며 동사무소에 애원하며 겨우 복사본을 받았다.


4년 전 받은 학대 피해 사실 소견서로 피해자보호명령을 신청하는 게 무리가 있다는 걸 알지만, 살고 싶다는 간절함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하는 심정에 가정법원으로 찾아가 온 힘으로 꾹꾹 누르며 사유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법원에 증거 불충분으로 추가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사건을 종결한다는 등기를 받았다. 그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난... 그래, 어쩔 수 없지 하며 사건을 접수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잊고 지냈다.


3개월이 지난 시점, 갑작스럽게 법원에서 또다시 등기가 날아왔는데 심리재판을 해보겠다는 연락이었다. 응? 사건 종결 아니야? 나도 이걸 접수했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을 정도였는데 갑자기 심리재판이라니.... 세상이 무너져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나 보다. 꼭 참석해 피해자보호명령을 받아야지 했으나, 계획대로 된 것은 없다. 심리재판하기로 한 날, 나는 심하게 앓으며 출석날 참석하지 못했다. 얼마나 많이 울고 속상했는지 모른다.


법원에서 정한 약속한 날이라, 등기에 적힌 번호로 전화해 참석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드렸더니 원칙으로는 안 되는 거지만 스피커폰으로 해서 통화까지는 괜찮냐는 반문을 받았다. 나의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는 것, 어??? 하는 모든 의문들.


법원 참석해야 했지만, 통화로 진행하며 들었던 말들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사건 종결이 맞으나, 예외로 진행된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사건을 접수했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내게 물으셨고 나의 답을 몇몇 분들이 스피커폰으로 들으셨다.


"음..., 제가 이 사건을 보면서 먼저 가해자인 어머님에게 전화통화를 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했어요."

"네?"

"어머님이 이 정도로 이러면 다시는 안 만나고 근처에도, 연락도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배신감에 찌들어 다시는 연락하지도, 만나려 하지도 않겠다 법원에 약속했다면 안심이 되었다.


"그..., 알겠습니다. 저도 그 병원 서류 말고는 더 낼 수 있는 증거물이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이젠 정말 안심하세요."


짧은 통화였지만 기적처럼 일어난 모든 일들에 울컥했다. 원래는 종결되고도 남았을 일인데, 심리재판을 분명 출석했어야 했는데..... 평생을 눈물로 보낸 나에게 답해준 보상 같았다. 한동안 그리 안심하며 살았지만, 모든 평화는 12월에 박살 나게 되었다.


엄마가 또다시 동생의 마음을 이용해 나를 만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와 동생은 아주 각별하고 특별한 사이이다. 나에게 동생은 그 수없는 학대 고통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큰 힘이었고 살아가게 만들었던 존재였다. 동생에겐 난,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다. 1년 8개월 동안 매일 밤이 되면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하염없이 떨어트린 눈물들이 모여 항상 그 자리, 그곳에 눈물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 쓰러지듯 무릎 꿇고 앉아, 길 가다가 도 동생이 생각나 눈물을 떨구며 그리움에 대해 기도했었다.


그 기도는 하늘에 닿아 12월 2일, 경비실 호출을 계기로 만날 수 있었다.


".. 밤에 엄마가 또 찾아왔다고 해요. 층수만 잘못 알고 있고 아침이 되면 관리실을 통해서 엄마가 찾아갈 것 같은데 관리실에 연락해 보세요. 동생이랑 왔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안 오겠다며, 근처에 맴돌지도 않겠다며. 부글 끓어오던 중, 어쩌면 이 만남은 매 순간 그리움에 눈물로 보냈던 나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만 같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잡고 동생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 안녕? 너 서울 왔다며. 지금 어디야?"

"응, 서울이야. 지금? 엄마 친구집..."

"그래, 만날래?"

"어?"

"누난 너 정말 보고 싶었어. 단, 엄마랑 절대 같이 오지 마. 엄마 데리고 오면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 죽어서도. 각오해."


단호하게 엄마를 떼어 올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동생이라도 엄마와의 관계는 더 이상 이어갈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분명히 말했다. 네 옆에 엄마의 흔적이라도 보이면 누나랑 평생 못 볼 생각하고 있어."

"응."


몇 시간 후, 동생을 만났다. 1년 8개월 만의 재회였지만 특별한 만남처럼 느껴지지 않고 늘 그래왔듯 봤던 사이처럼 느껴졌다. 대뜸 날 보고 집 가고 싶다고 말하는 동생과 어이없어하는 내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우리가 오랜 시간 떨어져 극적으로 만난 사이라고 보긴 어려울 테니까.


여러 질문이 오갔고 동생은 시종일관 무뚝뚝한 짧은 단답을 일관했다. 무성의한 대답 같아도 꽤나 내게 애정이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다 대답해 주는 모습을 보면..., 서로가 멀리서 그리워하며 지내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그러던 중, 동생이 지갑에서 체크카드 하나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뭔데?"

"카드."

"그래, 카드 알아. 뭐냐고-."


나 역시도 무뚝뚝한 편이다. 동생은 짤막하게 엄마가 준 카드라고 말하며 당장은 10만 원 정도 들어 있지만, 내일 중으로 600만 원이 들어갈 거라고 학원비에 쓰라고 엄마가 전해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 600.... 이 600만 원을 왜 내게 주려고 했는지 기억이 났다. 예전 나의 꿈은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사업하는 게 꿈이었다. 당장 상황이 되지 않아 대학교는 중퇴를 해야 했고 형편도 마땅하지 않아서 1년 수강비로 드는 600만 원은 꿈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일 때...,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다.


"도로 가져가. 엄마 돈이면 필요 없어."


동생이 내 말에 상심한 듯 고갤 흔든다. 엄마가 1년 동안 열심히 모은 돈이라며 가져가라고 고집부리는 동생에게 한숨 쉬며 모든 것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 내가 널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거 알지?"

"... 응."


동생은 고갤 바로 끄덕였다.


"그런 내가 너에게 연락을 끊었다는 건,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도 알 거야."


동생은 아무런 말 없이 나의 말을 수긍하듯 보였다. 동생이 바라보는 나는 특별히 무엇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거라는 확신과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불합리한 일을 시킬 때 내가 반응하지 않거나 따라주지 않으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있었어. 그건 '너.', '너야.' 모든 순간,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너를 들먹이며 협박해 왔어. 이렇게 하면 동생이 괴로울 텐데 너 그거 괜찮아? 마음 안 불편하겠어?라고 말하면서."


살짝 충격적인 말에 눈의 동공이 커진 동생을 보았다. 눈을 찔금 감아야 한다. 그동안의 쌓인 오해도 있을 테고, 동생에 대한 나의 그리움과 간절한 기도 속에서 버티고 있었음을 전해주고 싶으니까. 동생도 정말 듣고 싶을 거다. 특별히도 자신에게 대해줬던 존재가 갑자기 가족들에게 차갑게 대할 이유가 있을 거라고.. 확신할 테니.


".. 네 왕따, 누나가 다 정리하고 처리한 거 알지?"


아무런 말도 없던 동생은 고갤 끄덕이며 한 글자로 대답했다. "응."


"그 후에 엄마아빠는 마치 자신들이 해결한 척 당당하고 멋진 부모인 듯하셨어. 그런 엄마아빠 모습에도 난 아무런 말도 반응도 안 했고... 왜냐면, 네가 더 이상 아프지 않는다면 그걸로 된 거니까. 누가 했고는 중요하지 않지. 네 안전은 늘 중요했어, 누난... 별 상관이 없었던 거야. 누나, 예전에 대전에 살 때 엄마한테 종용당해서 아빠에게 300만 원을 받은 일이 있어. 그땐 몰랐는데, 아빠가 카드대출받아서 줬더라. 그 돈 받고 나니까 난 300만 원 받고 모르는 척하는 나쁜, 패륜아가 되어 있었어. 엄마가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다녔거든. 자신은 너랑 같이 굶어가며 괴로운데 딸 살려보겠다고 희생한 사람이라고 했고 나는 돈이 좋아 부모를 버린 패륜아라고 손가락질받고 왕따 당했어. 엄마가 그렇게 말했었고...., 너라면 이렇게 아픈 경험이 있는데 이 돈 받고 싶겠니?"


그러자 동생은 조용히 카드를 집어 다시 지갑에 넣었다.


"다른 건 참을 수 있어.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상관없어. 근데, 너도 누나 성격을 알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건 정말 괴로워하고 못 참아. 모든 순간, 자신들이 불합의할 때마다 엄마도 아빠도 인질로 두고 협박한다면 참아낼 수 있겠어? 전에도 그랬잖아. 2019년도에도... 누나가 잠시 연락 안 할 때, 엄마가 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생각해 봐, 너도. 2021년 크리스마스땐 어땠니? 내가 엄마한테 사랑해 달라, 내 마음 좀 제발 알아달라고 연락했을 때 엄마가 너한테 내 존재가 잘못이라며 널 괴롭게 하고 집 나가버렸잖아. 그리곤? 자꾸 중간에서 네게 마음을 괴롭게 했지? 이게.... 내가 너와 연락을 끊어야 했던 이유야."


납득한 듯 표정이 한결 편해 보였다. 동생도 얼마나 불안했을까? 미우면서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을 테니까.


한숨을 푹푹 내쉬고 몇 마디 주고받고 동생을 역까지 데려다 주려 지하철로 갔다. 데려다주면서 내심 불안했지. 혹시나 동생 데려다는 과정에서 엄마를 마주치게 될까 봐. 내 앞에서 엄마와 어떻게 만나야 할지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무서웠다.


스쳐 지나갈 방법은 없을까? 동생이 알아서 갈 수는 없을까? …. 다신 만나고 싶지 않은 그 사람, 그 이름, 엄마.


내색하진 않았지만 내심 불안에 떨며 환승역에서 내렸는데 동생이 없다. 어? 뭐지? 연락을 해봐도 받지 않던 동생이 보이스톡을 걸어왔다.



시청역에서 내리기로 했는데 어이없게도 을지로 3가에서 내렸다는 말… 신이 도운 걸까? 불안하고 무서워하는 날 보며 불쌍해서, 가여워서?


결국 동생은 을지로에서 엄마와 만나 광주로 돌아가기로 했고 알겠다는 대답으로 그렇게 어이없이 만나고 어이없이 헤어지며 우리의 만남은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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