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잭스윙
뉴진스. 신곡이 나올 때마다 그녀들의 무대는 예상을 뒤엎는 춤 맛이 있다. 몇 달 전 How Sweet에서는 엉거주춤하면서도 세련된 맛을 요구하더니 이번 신곡은 힙합 간지가 좔좔 흐르는 뉴잭스윙 맛이다. 내 연배라면 듀스의 '나를 돌아봐'를 떠올리면 된다. 힘차게 점프하며 빠르게 발을 놀리고, 와중에 팔도 오른쪽 왼쪽 뻗었다 접었다 하는 춤이다. 요즘 여자 아이돌들의 끈적한 섹시와는 거리가 좀 멀다. 귀여운 쪽도 아닌데 뉴진스가 하니 상큼하긴 하다. 잘 추고 싶은 욕심이 나지만, 한 끗 차이로 관광버스가 돼버릴 수 있는 조심스러운 춤이기도 하다.
신곡이 나왔을 무렵 바로 춰보고 싶었지만, 하필 아이들 방학시즌이라 잠시 댄스를 쉬는 언니들을 위해 한 달을 참았던 곡이다. 기다리면서 영상은 얼마나 챙겨 봤는지. 그렇게 봐도 봐도 어떻게 추는 건지 알 수 없는 춤이지만, 이미 느낌만은 탑재 완료. 배우기만 한다면야 흥 하나는 완벽하게 실어낼 각오로 드디어 지난 주 슈퍼내추럴의 첫 수업이 있었다.
첫날 수업 결과는 참담했다. 원곡의 빠르기로 하면 10초도 안 되는 분량을 배웠을 뿐인데, 온몸은 땀으로 젖고, 몹쓸 왼발은 계속 헛발질을 해대고, 재빠르게 끝내야 하는 턴 동작에서는 단 한 번도 착지를 성공하지 못했다.
둘째 날 수업은 더 참담했다. 시작은 좋았다.
"와! 승연 씨, 연습했어요?"
"하하, 티가 좀 나나요?"
맞다. 주말 동안 나는 틈날 때마다 연습했다. 집에서 연습하기엔 공간도 협소할뿐더러 맨발로는 영 느낌이 안 나는 춤인지라 아이가 줄넘기를 한다고 밖에 나가면 따라 나가 주변 눈치를 살피며 턴을 해댔다. 자꾸 먼저 나대고 싶어 하는 왼발에게 너는 먼저 디디는 역할이라고 주의를 주면서 말이다.
이틀간 내 노력을 선생님도 알아볼 만큼 내 왼발은 정신을 좀 차렸고, 한 바퀴를 턴을 돌고도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았다. 문제는 새로 배운 토끼춤이다. 만만하게 봤던 춤인데 이럴 줄이야. 이번에도 왼발이 문제다. 무릎을 한 번 치켜들고 발을 내려야 하는데, 눈치 없이 자꾸 앞으로 뻗어지는 내 왼발. 속이 터진다. 분명 어려운 동작은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나대는 왼발이 한심스러웠다. 제대로 춘 거 같지도 않은데 또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걸그룹 안무 중에 땀으로 젖는 노래는 귀하다. 그만큼 제대로 살리면 춤 좀 추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치명적인 눈빛과 느끼한 웨이브가 없어도 산뜻하게 즐길 수 있음은 물론 칼로리 소모도 엄청나다. 물론 그 핑계로 또 어마어마하게 먹겠지만.
어찌 됐건 두 번째 수업마저 끝났고, 세 번째 수업까지 마무리되면 네 번째는 촬영이다. 이번 곡만큼은 꼭 제대로 멋지게 해내고 싶은 마음은 우리 노진스 멤버들 모두 같은 마음이다. (노진스는 늙은 뉴진스라는 뜻이 담긴 우리 댄스멤버들의 그룹명이다. 언제든 가입과 탈퇴가 가능한, 열려있는 그룹이다.) 수업이 끝나고, 여느 때처럼 커피 한잔을 들이켜면서 우리는 춤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간 미뤄왔던 '연습실'을 예약하기에 이르렀다.
연습실까지 따로 잡고, 연습을 하기엔 우린 너무 아마추어 아닐까. (자고로 연습실이란 전공생이나 전문가들을 위한 공간 아닌가 싶은 거리감이 있었다.) 그렇게 까지 해서 계속 버벅거리면 창피하지 않을까. 역시 그건 오버야.라는 생각으로 미뤄만 왔던 연습실 예약. 드디어 추진력 좋은 언니들이 나서주었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게 요샌 너무 속상하더라.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언뜻 보면 춤과는 거리가 멀게 생긴, 그러니까 어딘지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머리스타일도 똑 단발인 언니의 말이 오늘은 좀 강하게 내 마음에 박혔다. 맞다. 나는 좋다고 춤을 좋아하고, 즐기면서도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는 춤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춤을 소재로 글까지 쓰면서. 영상을 찍는 날엔 그 성취감과 기쁨에 벅차 인스타에 바로바로 게시하면서 고작 연습실 하나 빌려 연습하는 걸 내외하고 있었다니. 하고 싶은 거 다하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슈퍼내추럴에 이런 가사가 있다.
My feeling’s getting deeper
내 심박수를 믿어
우리 인연은 깊어
I gotta see the meaning of it
춤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점점 깊어가는 요즘이다. 비틀대는 턴과 말 안 듣는 왼발이 답답하고, 속상할지언정 함께하는 우리의 노력과 가쁘게 뛰는 우리의 심장을 믿어보기로 하자. 다가오는 목요일에 세 번째 수업을 마저 듣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 널따란 연습실에서 함께 지지고 볶다 보면 화요일에 있을 촬영을 또 멋들어지게 해낼 수 있을 거다.
화요일에 입을 의상을 미리 세탁소에 수선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탑 위에 걸칠 이 옷으로 뉴잭스윙의 맛을 좀 더 살려보리라. 내 춤사위는 관광버스 느낌이 조금 나더라도 슈퍼내추럴하게 즐겨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