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암 일출등반
아직 어둠이 한참인 새벽 5시 30분. 펜션 앞 묵묵히 서 있는 차에 한 사람씩 차례로 올라탄다. 가을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패딩에 고양이 인형 하나를 꼭 껴안은 8살 꼬맹이, 아직 잠이 덜 깨 멍한 표정의 11살 여자 아이,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헛웃음 짓는 남자어른, 연신 고맙단 말을 퍼부으며 고요한 일가족의 텐션을 끌어올려보려 노력하는 여자 어른까지, 총 네 명이다.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꿈꾸던 그림이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다.
작년부터 산 맛을 알기 시작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날을 꿈꿨었다. 친한 엄마들과는 가끔씩 모여 동네 산을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가족끼리는 도통 기회가 오질 않았다. 기회가 없었다기보다는 모두들 기피하고 있었달까. 2년 전 아이들과 나만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서 가볍게 올랐던 오름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산이라면 질색을 했다. 조금만 걸어도 허리를 틀어잡고, 아픈 시늉을 하는 남편에게 '등산'이란 나로 따지면, 철인 3종 경기 같은 것, 그러니까 내가 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종류의 것이었다.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타는 다리통증마저 희한한 쾌감이 되어버리는 산의 매력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기어코 정상에 올라 도시 하나를 내려다보는 짜릿함 같은 것을 함께 느끼고 싶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 지도. 산에 오른 날 밤엔 얼마나 단 잠을 잘 수 있는지도 함께 겪어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산에 가자는 말은 쉽지 않다. 어떤 느낌일지 아니까. 등산을 필수 코스로 여기던 부장님들을 꼰대 보듯 했던 시절의 나도 있었으니까.
아이 학교에만 있는 1주일 가을방학을 맞아 남해여행을 계획하면서 '금산 보리암'에 대해 알게 됐다. 블로그리뷰 몇 개만 봐도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멀리까지 가서 여길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혼자라도 가볼 요량으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출명소', '남해여행 필수코스', '15분이면 오릅니다.''
'어쩌면... 다 같이 갈 수 있겠는데?'
일찍 가서 금산 2 주차장에 주차만 할 수 있다면 보리암까지는 아무리 느린 걸음이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단다. 어렵고 험한 길도 전혀 없어 아이들도 쉽게 오른단다. 심지어 조금만 더 가면 '금산산장'이라는 라면 맛집이 있다는데, 거기 뷰가 그렇게 끝내준단다. 이 정도면 산에 질색하는 세 사람을 꼬드길만했다. 20분! 라면! 은 괜찮은데 일출에까지 욕심이 나는 게 문제였다.
"얘들아.. 엄마가 이번 여행에서 꼭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같이 해줄 수 있을까?"
"오빠.. 이번엔 오빠 쉬고 싶은 만큼 푹 쉬어도 돼~ 근데 딱 한 가지만 같이 해줄 수 있을까?
"뭐? 5시?"
아이들도 남편도 놀라긴 했지만, 생각보다 쉽게 넘어왔다. 이성계가 조선건국을 위해 100일 동안 기도를 드린 곳이기 때문도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도 아니었다. 순전히 라면 덕이었다. 건강에 이로울게 하나 없는 라면 같은 음식은 웬만하면 피하는 엄마덕에 늘 라면에 고픈 아이들이다. 심지어 자기 전엔 TV도 볼 수 있다니. 솔깃할 수밖에.
금산 제2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내 남편은 이 시간에 우리가 이 어두운 길을 달리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잠 많고,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등산을, 심지어 일출등반에 빠지게 될 줄 몰랐단다. (예전 코타키나발루 여행 때는 기어코 혼자 일출등반을 했다.) 5시가 돼도 알람이 울리지 않길래 못 가나 보다 했단다. 내 알람은 주중에만 울리도록 설정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5시 5분이 되자 놀라 눈을 부릅뜬 내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아이들을 깨우길래 본인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거란다.
"여보, 라면 생각만 해. 얼마나 꿀 맛이겠어."
찬 바람에 꼬들하게 식혀 먹을 라면을 상상하며 우리는 무사히 주차를 하고, 준비해 온 랜턴을 머리에 둘렀다. 역시 일출명소답게 주차장은 이미 거의 꽉 차 있었다.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의 아이들도 보여 내심 안심도 했다.
'나만 극성은 아니네.'
정말 20분이 걸렸다. 일출 시간이 가까워 오던 때라 금방 어스름하게 빛이 깔리기 시작해 랜턴은 무용했다. 경사가 완만한 포장길이라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보리암으로 가기 직전에 만난 계단이 아이들에게는 살짝 고비였지만.
6시 20분. 드디어 보리암에 도착한 우리 일가족. 일출시간은 6시 43분이었다. 23분의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정신없이 아이 둘을 세웠다가 남편을 세웠다가 나도 서봤다가 하면서 사진을 찍고, 찍혔다. 처음 보는 경치에 '우와'를 연발하는 아이들에게 엄마 덕에 이런 것도 보지, 하면서 생색도 냈다. 아름다웠다. 바다 사이사이 둥그런 육지들과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지평선, 그 위로 자욱한 구름의 일체가 마치 신들이 사는 곳 같았다.
"오늘 구름 많아서 안 보이는 거야 가자 제발."
"아직 일출시간이 3분이나 남았어 좀 기다려보자."
이런 풍경을 눈앞에 두고, 저런 말을 하다니. 대체 난 왜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한 거지.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지만, 참아본다. 43분이 한참 지나도록 여전히 빨갛고 선명한 해는 보이지 않는다. 구름 뒤로 붉은 기운이 더 진해졌을 뿐이다. 역시 구름에 가리는 건가. 더 기다려보고 싶었지만, 이미 한 걸음씩 떼고 있는 남편을 더 세워 둘 수 없어 어정쩡하게 다음 코스로 출발했다. 나만 아쉬운가.
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 왔던 길보다 보리암에서 라면 맛집인 금산산장까지 가는 길이 더 험했지만, 아까와는 다른 텐션으로 단숨에 오르는 두 아이와 남자어른이 그저 놀라웠다. 이렇게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이었다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역시 라면의 힘이겠지.
그 라면이란 게 고작 미니사이즈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뷰 좋은 명당자리는 이미 만석이라 무성한 풀무더기 옆 테이블에 겨우 앉았지만, 괜찮았다. 이미 코를 박고 라면을 흡입하는 아이들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으니까. 선명한 해를 보지 못한 아쉬움도 개운한 라면 맛에는 못 당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보리암에서 이성계는 기도를 올리고, 우리는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이성계는 조선건국을 이루고, 나는 가족들과 일출등반의 꿈을 이루었다. 비록 구름에 가린 해였지만, 구름 뒤에서 흐릿하게 번지던 해가 더 낭만적이었다. 비록 남편의 보챔과 투덜거림이 있었지만, 허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라면 물도 잘 맞춰주고, 운전까지 해주지 않았는가. 그래도 내가 이 남자와 결혼까지 한 이유가 있긴 있나 보다. 금산 꼭대기에서 바라봤던 남해의 절경만큼이나 마음이 예뻐지고, 넓어졌나 보다.
내려오는 길에도 다들 힘들다며 투덜 댔지만,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한번 더 가족등반을 추진해 봐야지. 라면이 있는 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