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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용투 Jul 22. 2023

전 남자친구의 결혼소식을 들었다(2)

나의 이별 이야기



“ 00형 아들!! 지난달에 결혼했잖아!”

나는 그냥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그럼 그 집 제가 아는 그 집이랑 다른 집이에요”라고 말했다. 헤어진 지 1년밖에 안 되었는데 무슨 결혼이며, 심지어 S의 카톡 상태메시지는 아직도 내 별명을 영어로 바꾼 것이었다. 그런 S가 결혼을 했을 리 없다.

“맞아요, 그 집 첫째 아들 D대학 나와서 스타트업에서 일하잖아요? 엄마는 약국 하시고, 둘째는 수의사고? 맞죠?“ 고객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맞다. 그 집이다. 너무 자세하게 다 똑같잖아... 아 그럼...?’ 나는 웃으며 물어봤다. “아 둘째가 결혼했어요? 벌써? 여자친구 없다고 했었는데! 참, 형보다 빨리 가는 게 어딨어요!“

고객은 자기 결혼도 아니면서 자랑하듯 말했다 “아니요, 첫째가 결혼했어요! 내가 지난달에 결혼식 다녀왔다니까~ 삼청동에서 했어! 거기 되게 비싼 곳인데, 덕분에 오랜만에 서울도 놀러 가고 재밌었지~ 예전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랑 버스 타고 다녀왔어요! 식대가 15만원이래! 그래서 축의금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했어요!”

사람이 충격을 받아들이는 첫 번째 순서가 부정이라고 했던가. 나는 고객의 말이 당연히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 고객... 잘못 알고 있어도 단단히 잘못 알고 있다.

“아니 고객님... 둘째요.. 수의사 둘째가 결혼한 거 아니에요? 첫째가 스타트업이고, 둘째가 수의사예요!” 나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대리님. 첫째 맞아요. 스타트업 첫째요. 아! 모바일 청첩장에 이름 쓰여있었는데 내가 한 번 다시 봐볼게요!!“ 고객이 핸드폰을 뒤적였다. “아 이런 한 달이 지나서 청첩장은 볼 수가 없네... 근데 여기 이름은 나와요! S! 첫째가 S잖아요! 근데 S가 대리님이랑 친구예요? 같은 학교 다녔어요?”


나는 그제야 S가 결혼했음을 깨달았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더 이상 어떤 말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다는 게 이런 말일까... 옛날 사람들이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니까...

고객은 궁금한 얼굴로 계속 날 쳐다봤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에 눈물이 가득 차서, 지금 눈을 깜빡이면 눈물이 툭 떨어질 것 같았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 6년간 은행에서 일하면서 별의별 고객을 다 만났지만, 단 한 번도 고객 앞에서 울어본 적 , 화내본 적 없는 나였다. 그런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오늘 처음 본 고객을 마주하고 있다니. 나는 더 이상 숨길수도, 숨길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담담하게 대답했다. “전에 만났던 친구예요. 전남자친구요. 전남친...”

입을 떼는 순간 이미 쏟아진 눈물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마구 흘러서 내 앞에 있는 고객의 표정도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런 걸 볼 정신도 없었지만...

고객은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실수를 했다고 전혀 몰랐다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참을 울고 나자 정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고객 앞에서 울어버린 게 창피하기도 하고 실례를 했으니 사과를 먼저 했을 테지만, 지금은 평소와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사과는커녕 나는 고객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아니! 하루이틀도 아니고 3년 넘게 만났는데 헤어지고 1년도 안되어서 결혼하는 게 말이나 되는 거예요 지금? 어이가 없네... 누구예요? 누구랑 결혼한 거예요? 언제, 얼마나 만난 거구요? 아 참나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진짜 미친놈 아니냐구요! 헤어질 때 그렇게 울고불고 그 난리를 피워놓고 결혼을 했다구요? 사업한다면서 결혼은 왜 하는데요!?”

고객은 울다가 화를 내는 나를 짠하게 보며 대답했다. “같은 회사 다니는 사람인데, 회계사래. 근데 이번에 00형 법인 정리했거든 그거 도와주면서 많이 가까워졌나 보더라고. 집에서도 회사 정리하면서 아들 장가보내고 싶어 하기도 했고 뭐 그래서 결혼했다나 봐요. “ 고객은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무슨 얘기를 해줬는지 지금 생각하면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들.


고객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분노가 치밀었다. ‘같은 회사고 회계사고 뭐고 그 여자는 알 거 없고, 나는 아직도 이상한 꿈이나 꾸고 못 잊고 있는데 지는 이렇게 빨리 결혼이나 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한테 소식을 듣게 만들어? 지만 행복하게 잘 산다고?‘ 나는 이런 생각만 계속해서 반복했다. 날 너무 빨리 잊고 잘 지내는 빌어먹을 S, 그에 반해 아직도 예전 기억 속에 살고 있는 미련한 나. 완전히 대조적인 이 염병할 상황이 나를 계속해서 화나게 만들었다.


타인에 대한 공감.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100% 공감이라는 것은 절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내 일이 아니면 남의 아픔, 슬픔도 그저 재미있는 가십거리이기 마련이다.

고객은 계속해서 내 딸 같아서 그렇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흥미롭다는 듯 이런저런 질문을 해댔고, 나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면서도 역겨워 대충 얼버무리면서 대답했다.

‘이 푼수 같은 인간... 사람이 앞에서 이렇게 우는데 저는 재밌다는 표정이네... 누가 누굴 탓해 처음부터 00스타 얘기 꺼낸 내가 잘못했지’ 나는 고객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체념하듯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전남친의 결혼소식을 들을 수 있는 건지. 우리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고향이 같다는 것 말고는, 낯을 많이 가리는 내 성격 탓에 장기연애 커플이 흔히 하는 더블데이트나 친구들 끼워서 같이 놀아본 적도 드물었다. 그나마 서로 아는 친구들도 연락해 본 적도 없었다. 나중에 S가 성공하면 유퀴즈를 통해서나마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갑자기 내 분노는 이 우연한 상황에 대한 신기함으로 바뀌었고 고객에게 ”아니 근데 어떻게 이렇게 신기하게 알게 되죠? 걔의 결혼소식을?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라고 물었다.

거의 한 시간을 푼수처럼 떠들던 고객이 진지한 얼굴로 바뀌더니 이야기했다.

“알 때가 된 거예요. 대리님... 대리님이 이제 알 때가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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