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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화 May 15. 2024

나의 선생님

   누구나 살다 보면 혼자서 버티기에는 너무나 힘들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찾아온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 시기에 자주 꾸던 꿈이 몇 가지 있다. 

  

   ‘광활하고 어두운 밤바다에 커다란 난파선이 한 척 있고 그 배에 내가 타고 있다.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얼음 바다 한가운데에 배는 얼어붙어 있다. 나는 그 배에서 맨발로 구조를 기다린다. 너무도 춥고 바람은 거세서 곧 얼어 죽을 것만 같다.’ 


   또 자주 꾸던 꿈이 생각난다. 


   ‘아이를 등에 업고 홀로 얼음 산을 오른다. 산은 너무도 차갑고 높기만 한다.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오른다. 아이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한 손은 업은 아이를 꼭 감싸고 한 손으로 산을 오른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미끄려져 서 떨어져 죽을 것만 같다. 힘은 빠지고 발은 시리고 춥고 아프다. 아이를 떨어뜨릴까 봐 공포스럽다.’ 

 

   비슷한 꿈들을 반복해서 꾸었었다. 꿈에서 나타나듯이 그때 나는 철저히 혼자라고 느꼈었다. 생각해 보면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 나는 용기를 내서 선생님을 찾아갔다. 정말 아무런 희망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있었기에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긴 만남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항상 밝은 목소리와 미소로 반겨주셨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다. 모든 과정은 매우 천천히 진행이 되었다. 며칠이 아닌 몇 달이 아닌 몇 년에 걸친 만남이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서서히 회복해 나갔다. 이렇게 말하면 마법 같은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그 과정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거의 매일을 울었고 매일 더 많은 악몽들을 꾸웠다. 많은 시간 눌러왔었던 분노와 슬픔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혼자서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다른 정서들도 마찬가지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모든 순간을 선생님과 함께 했다. 


   그 시간을 기억해 보면 슬픔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눈물이 저절로 맺힌다. 상담의 끄트머리에서는 많은 슬픔이 올라왔었다.  슬픔이 가득 찼던 그곳은 한쪽 창이 조금 열려 있어서 바람이 창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햇살이 밝게 들어왔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펜으로 노트에 나의 이야기를 적기도 한다. 어쩔 때는 매우 심각한 얼굴을 하고 듣기도 하시고 어쩔 때는 밝게 웃기도 하신다. 


   나는 선생님과의 대화를 모두 녹음했다. 선생님께 처음 그 제안을 했을 때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그때 선생님은 나에게는 사람에 대한 깊은 불신과 경계심이 강하다는 것을 아셨을 것이다. 처음에는 꼼꼼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공부한 것을 복습하듯이 녹음 내용을 듣고 또 들었었다. 나중에는 녹음하지 않았고 녹음 내용도 다 지웠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시간을 떠올려보면 기억에 더 남는 것은 ‘어떤 말을 했나 어떤 말을 들었나’ 보다 그 모든 것들이 포함된 분위기와 시간과 공간을 감싸고 흐르던 마음들이다.  그 후로 십여 년이 지났다. 긴 상담을 마친 이후로도 몇 번 다시 선생님을 찾았다. 좋은 일이 생겨도 찾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찾았다. 그때마다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오면 된다.’라는 말을 마지막 인사로 하신다. 


   이제는 그때처럼 맨발로 혼자 헤매는 꿈을 꾸지도 않고 혼자 얼음산을 오르거나 얼음배를 타고 있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벚꽃이 활짝 핀 따뜻한 어느 봄날 창을 내다보았는데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났다. 그래서 연락도 없이 무작정 버스를 타고 선생님에게 갔다. 선생님은 내가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해하시며 이것저것 자세하게 물어보신다. 또다시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또 말씀하신다. 언제든 오고 싶을 때 또 오면 된다고. 그 말을 듣고 또 한 번 안심한다. 


   힘들 때도 선생님이 생각나지만, 이제는 좋은 날도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을 만나서 이렇게 살아 있고 또 잘 살아가고 있다고 보여드리고 싶다. 그 많은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 선의와 정성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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