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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나 Dec 09. 2024

1. 동산 위의 집

                                 

우리 집은 예뻤다. 멀리서 보면 말이다. 그런데 사실 가까이서 보면 그냥 오래된 집일 뿐이다. 벽과 천장에 난 수없이 많은 금을 보면 백 년은 된 집 같다. 아, 1970년도에 벽돌집으로 다시 짓고, 80년도에 보일러 공사를 했다니 50년 된 집이라고 해야 하나?


북쪽을 바라보고 지어져서 그런지 여름에 열대야가 없다. 하지만 낮에는 햇빛을 잔뜩 받아서 집 안이 온통 찜통이 된다. 벽이 무척 얇아 겨울에는 시베리아 벌판처럼 방 안에 찬바람이 빙글빙글 분다. 그나마 여름이고 겨울이고 앉아 있을 곳도 충분치 않다. 달랑 방 두 개에 손바닥만 한 주방이 전부니까. 


우리 집은 작은 언덕 위에 있고, 집 입구에서 큰 걸음으로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아름드리 미루나무가 서 있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핀 노란 개나리며 튀밥 같은 하얀 조팝나무꽃이 집을 장식해 준다. 포장하지 않고 흙으로 놔둔 안마당에는 천연 잔디가 가지런히 깔려 있다. 가을이면 둥글넓적한 미루나무 잎이 단풍이 되어 마당을 구르고, 울타리로 심은 화살나무의 작은 잎들은 마치 앙증맞은 꽃인 양, 빨갛게 물든다. 사람들이 길에서 우리 집을 올려다보고 ‘와~’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내가 봐도 우리 집은 꼭 영화에 나오는 ‘언덕 위의 집’ 같다. 


마을 끝에 있는 이 집은 원래 증조할아버지의 집이었다고 한다. 나와 한방을 쓰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그 때는 우리 집이 기와집이었다. 증조할아버지가 30대의 튼튼한 농사꾼이고 할아버지가 나만 한 나이가 되었을 때 휴전이 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비무장지역으로 지정된 이곳에 고향마을이 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서둘러 피난살이를 접고 올라왔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고향 사람들과 함께 옛날식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하지만 네 증조할머니는 좋아하지 않았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증조할머니는 북한 땅이 바로 바라보이는 이 마을에서 살기를 무서워하셨다고 한다. 2층짜리 마을 회관 옥상에 올라가서 보면 우리 마을에서 채 2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북한의 기정동 마을이 더 잘 보였다. 높은 첨탑 위에는 붉은 인공기가 펄럭였다. 이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 말고는 군인들밖에 없었다. 외지인은 마을에 들어올 수 없었으니까. 친척들도 나라의 허락을 받고서만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어른들은 논에 일하러 갈 때도 총을 든 군인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증조할머니가 가장 무서워한 것은 남한과 북한에서 서로 크게 틀어대는 방송 소리였다. 서로를 헐뜯는 방송이 들리면 증조할머니는 금방이라도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아 벌벌 떨었다고 한다.


“옆에 강아지라도 한 마리 있어야 겨우 안심을 하셨다니깐.”


할아버지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서 생각에 잠기셨다. 


마을 가운데쯤에는 내가 다니는 대성동초등학교가 있다. 나는 5학년 반이다. 선생님은 나이가 마흔이 다 되셨지만 참 예쁘시다. 운동복에 챙이 넓고 리본이 달린 예쁜 모자를 쓰고 텃밭에서 우리에게 식물 이름을 알려 주신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 우리 학교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선생님은 우리들의 선배님이기도 하다. 꼭 30명이 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모두 선생님을 좋아한다. 


승기가 조그만 소리로 웃으며 옆에 앉은 현서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선생님이랑 똑같은 모자 있어.”


나는 그 소리를 듣자 갑자기 조바심이 나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있어!”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는 듯 한쪽 눈을 찡긋하셨다. 

현서가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


“뭐가?”

“아니, 그… 선생님이 쓰신 모자 우리 집에도 있다고.”

“너희 집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승기는 곁눈으로 나를 찬찬히 보더니 고개를 휙 돌리며 쏘아붙였다.


“흥, 너희 그 코딱지만 한 집에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 가냐?”


아이들이 웃었다. 승기가 입을 비쭉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희 집에는 학교도서관만큼이나 책이 많고, 지민이네 집만큼 장난감이 많다며? 화학 실험도구며 카드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귀여운 새끼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운다며? 그게 말이 되냐?”


나는 당황했다. 여태껏 아이들은 내 이야기를 믿었다. 아니면 그냥 무시했거나. 어쨌든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했는지 그다지 따지지 않았다. 그런데 승기는 믿지 않는다니! 게다가 승기가 언제 우리 집을 봤단 말인가! 승기는 대성동마을 아이가 아니었다. 날마다 파주 시내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30명 전교생 중 반 이상은 마을 바깥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승기를 쳐다보고 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어서 뭔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 말 되지, 우리 집, 보기보다 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지하실이 있다고! 지하실에는 지난 전쟁 때 숨어들었다가 죽은 군인 해골도 있어!”


여자애들의 표정이 끔찍하다는 듯이 찌푸려졌다. 남자애들 중에는 해골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있었다. 승기는 코웃음만 쳤다. 


길고 긴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내 허풍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방과 후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런데 그때, 승기가 나에게 슬며시 다가왔다.


“야, 도윤! 너희 집에 정말 군인 해골이 있어?”


나는 승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말을 정말로 믿는 건가, 아니면 빈정거리려고 그러는 건가? 표정을 보아하니 승기는 내 말을 반쯤은 믿는 것 같았다. 나는 기뻤다. 승기가 날 믿어 줬다! 나는 승기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얼른 말했다.


“그럼~! 너 오늘 우리 집에 와서 볼래?”


승기가 어깨를 움찔했다. 내가 곧바로 초대하자 도리어 놀란 듯했다. 거짓말을 한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뭐 어떤가? 생거짓말은 아니니까. 허풍이 좀 들통나면 어때, 승기가 우리 집에 오는데! 난 뛸 듯이 기뻤다. 난 학교에서 애들을 재미있게 웃겨 주는 아이다. 그러니 허풍 좀 떨었다고 애들이 날 왕따시키진 않을 거다. 나는 자신만만했다. 


승기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오늘 바로는 안 돼. 부모님 허락을 받고 나서 선생님 허락도 받아야 하잖아. 내일 어때?”

“좋아!”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승기의 어깨에 팔을 척 둘렀다. 승기가 애매하게 웃었다. 우린 벌써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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