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갔다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만났다. 이전에 읽은 책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바로 집어 계산대로 향했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사 모으는 것은 이상하게 즐겁다. 집에 읽어야 하는 책이 쌓여만 가는데도 책 쇼핑은 포기할 수가 없다. 소파 근처와 침대 근처에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있는 게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아무튼 워낙 반가운 책이었던 터라 미루지도 않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역시 참 좋았다. 일상적인 장면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근사하게 이야기하는, 천천히 읽다 보면 내 일상도 함께 근사해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글들. 어려운 말이나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애쓰는 문장 하나 없이도 참 깔끔하고 사랑스러운. 새삼 작가님이 대단해 감탄을 하는 중, 한 에피소드가 갑자기 내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작가님이 글을 쓰기 위해 무거운 노트북 가방을 들고,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무거운, 글을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짊어지고 낑낑거리며 카페 빈자리를 찾아다니신 이야기. 잘 써지지 않는 글 때문에 조바심과 초조함으로 소중한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 이야기. 글 속에 담긴 스스로의 모습이 거짓되게 느껴져 괴로웠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
우습게도 순간 위로를 받는다. 홀로 글을 쓰는 내내 느꼈던 조바심에 누군가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는 기분이다. 쉽게 읽히는 멋진 글이었던 터라 쉽게 쓰였을 것이라 내 멋대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대단하고 멋진 분도, 이런 책을 몇 권이나 써내시는 작가님도 괴로운 마음을 안고 아프게 글을 써내려 가시는구나. 아프지 않은 창작이 어디 있겠냐마는.
정말 좋아하는 산문집의 추천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쓰는 사람은 앓고, 읽는 사람은 낫는다.' 신기하게도 그렇다. 누군가가 앓은 순간들은 의외로 작품에 담겨서는 또 다른 누군가를 안아주기도 한다. 그건 비단 글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림도 사진도 그럴 것이다.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누군가 나와 같은 아픔으로 앓고 있고, 고민하고, 조바심과 박탈감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그것도 내가 너무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반가울 일인가? 순간 내 모습이 조금 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괴로워했던 이야기를 보며 안심하다니. 타인의 불행을 행복으로 느끼는 못난 사람들의 모습이 잠시 나에게 비쳐 보인다.
그럼에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참 반가운 일이다. 같은 것을 겁내고, 함께 모여 두려움을 나누며 벌벌 떠는 것은 의외로 참 다정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나만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은, 우습게도 정말 큰 품으로 나를 안아주기도 한다. 영원히 존경하는 아티스트 개코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소속감, 그건 최고급의 위안.' 학생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불렀던 노래인데, 생각할수록 명문장이다. 10년째 곱씹으며 감탄하는 중이다.
랩 하는 선생님 유튜버.
나를 표현하는 세 곳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고 '경기도 교육청 홍보대사' 타이틀을 단 후에 새로 옮기게 된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나를 가까운 동료로 대하기보다는 혼자만 다른 꿈을 꾸는 특이한 사람처럼 멀게만 느끼는 게 자꾸 보였다. 래퍼들을 만났을 때는 그들 만큼 음악에 열정과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진지한 대화에는 낄 수 없었고, 유튜버들을 만났을 때도 그들의 회사나 광고 이야기, 반짝이는 컨텐츠 아이디어들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정교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붕 떠 있는 기분은 한동안 여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 동안 나는 해야 하는 게 뚜렷한, 도착지가 보이는 길을 열심히 걷기만 하면 되는 삶을 살았으니까. 갑자기 들이닥친 자유와 선택지들을 보며 길을 잃은 느낌에 허둥대고 있는데, 친한 친구들은 다들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이제 어디로 나아갈지를 고민했다. 결혼, 집, 청약, 차...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 혼자 거꾸로 가는 듯한 기분에 괜히 불안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위로가 되는 것은 조금 더 닮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남들이 쫓는 가치보다 스스로의 안목을 믿고 꿋꿋하게 나다움을 꿈꾸는 친구들과 밤새 수다를 떨곤 했다. 뒤집어진 낮밤, 온 세상이 던져대는 박탈감, 하고 싶은 일과 돈이 되는 일의 괴리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초조함 따위를 나누다가 서로를, 혹은 스스로를 향한 각오와 격려로 마무리하고 나면, 아- 이만한 위안이 없다.
나를 잡아먹을 듯 굴던 머리 아픈 고민들도 그들의 고민을 만나면 작고 당연해진다. 해볼 만해진다. 그런 고민을 하는 내가, 우리가, 멋지게 느껴진다. 끼리끼리 논다는 이야기가 이래서 맞는 게 아닐까.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고민도 결론도 닮아가니까.
타인의 불행에 행복을 느끼는 것 만큼 못된 심보는 없겠지만, 사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서로를 불행으로 안아주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불행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우리는 서로를 더욱 더 끌어안고, 일으켜주고, 함께 나아가니까. 세상이 뭣같지 않냐며 함께 욕할 수 있는 친구 하나가 새삼 고마워지는 날이다. 야, 니가 나한테는 최고급의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