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지 Jul 21. 2022

알고 있어도 괴로운 건 괴로운 거야

눈썹 문신 - 짱구의 함정



 지난달 드디어 눈썹 문신을 받았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눈썹이 사람의 인상을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지는 한참 전에 깨달았지만, 그 중요성을 알면 알 수록 도무지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평소 화장도 잘 안 하고 앞머리도 눈썹 아래까지 기르고 다녔기 때문에 내 눈썹은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화장 기술이 모자란데 눈썹은 거의 시도도 해보지 않았으니, 이제 와서 눈썹을 예쁘게 바꿔보려고 해도 나에게 어떤 눈썹이 어울리는지 알 리가 없다. 무조건 예쁜 모양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마다 어울리는 눈썹이 천차만별이던데. 심지어 두어 번 메이크업 샵에서 전문적인 화장을 받았을 때를 떠올려봐도, 평범한 모양의 눈썹들이 내 얼굴에서는 그렇게 촌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는데.


 실제로 초록창에 눈썹 문신을 치면 '눈썹 문신 망함'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눈썹 사진을 올리며 이 정도면 망한 건가요? 점점 연해질까요? 지울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다. 그러면 많은 전문가 선생님들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하고 달래기도 하고, 지운다고 해도 흔적은 남습니다, 라며 단호한 진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더는 미루지 말자 싶어 정보를 찾으러 인터넷을 켰다가도 이런 글에 홀려 몇 시간 동안 망한 후기를 읽다 보면 결국 의기소침해져 매번 그냥 창을 꺼버리곤 했다.


 누군가 눈썹 문신 얘기를 꺼내면 '나도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고 다닌 지 3년. 결국 사건이 터졌다. 눈썹 그리는 연필이 파우치 안에서 부러져 내 가방을 온통 새까맣게 물들여버린 것이다. 소지품을 우르르 쏟아내고 물티슈로 새까만 얼룩들을 하나하나 닦아내다 보니 순간 짜증과 피곤함이 훅 몰려왔다. 원래 쓰던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새로 사야 할 텐데, 그러면 또 얼마나 검색을 해야 할까. 수많은 발색샷과 튜토리얼을 보고 겨우 고른다 해도 사진 속 언니처럼 예쁘게 그릴 수도 없을 텐데. 언제 또 연습하고 어떻게 또 적응하냐구.


 두려움을 귀찮음이 결국 이겨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래, 아무튼 전문가 선생님께 신중하게 상의해서 받으면 내가 어설프게 그린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당장 눈썹 문신을 받자!





 온갖 곳에서 검색을 하고 후기 사진을 수백 장쯤 찾아본 뒤 자연스럽기로 유명한 곳으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잘 된 사진들을 일부러 더 찾아보았다. 색이 자연스럽게 빠져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 2주 동안은 어차피 짱구 눈썹을 견뎌야 한다고들 했다. 처음에는 망한 것 같다며 울었지만 나중에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지금 불안함이 증폭된 상태니까 오늘 받고 나면 분명 망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겠지? 나는 절대 그러지 말자, 2주 뒤에 판단해야 하는 거니까 오늘은 생각하지 말자. 굳게 다짐하며 내 안의 불안을 잠재웠다.


 끝났습니다, 거울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 불안을 잠재우기는 개뿔! 이 촌스러운 아줌마는 누구야? 여기서 아무리 연해진다고 해도 눈썹 모양 자체가 너무 두꺼운 데? 두꺼운 데다가 너무 가까워서 안 그래도 좁은 미간이 더 좁아 보이잖아. 꼬리는 또 너무 길고 쳐져서 무슨 만화에 나오는 무림 고수 할아버지 같아. 아... 이걸 어쩌면 좋지... 아아......


 그 순간의 절망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 눈썹이 이렇게 중요한 거였구나. 눈썹 하나로 이렇게 완벽하게 촌스러워질 수 있다니 엄청나잖아. 선생님께서는 모양이 너무 예쁘게 잡혔다며 말간 눈썹을 빛내며 예쁘게 웃으셨다. 혹시 사기꾼이신 게 아닐까..? 선생님 눈썹은 저렇게 예쁜데. 나는 이게 뭐야. 후기 사진들이랑도 너무 다르잖아.


 혼자 원망과 비통함에 빠진 나는 1~2주 후에는 색이 연해지며 훨씬 축소되어 보일 거라고, 혹시라도 색이 빠져서 너무 연해지면 리터치 받으러 오라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은 한 귀로 호로록 흘려버렸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나의 이 거대한 슬픔을 나누며 폭소와 즐거움으로 승화시켜보려고 했지만, 엄청난 좌절감 속에서 조금도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거짓말처럼 지금 나는 내 눈썹이 꼭 마음에 든다. 머쓱. 저러고 며칠간 만나는 친구들 마다 이 정도면 망한 거지? 얼마나 연해질까? 지우려면 지울 수 있나? 를 묻고 다닌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머쓱 머쓱. 왜 인터넷에 망한 후기가 많은지 이제야 알겠다. 다들 불안했던 거야. 아무리 사람들이 나중에는 괜찮아진다고 말해줘도, 괜찮아질 거라는 걸 알고 미리 예방주사를 맞듯 자기 최면에 주문을 왕창 걸어놨어도, 당장 괴로운 건 괴로운 거니까.


 재미있게도 그날 절망에 빠져 이리저리 찍었던 사진들을 지금 다시 보면 잘 된 후기 사진들이랑 다를 게 없다. 그냥 조금 더 선명할 뿐. 아무래도 내 얼굴이라 아주 미묘한 어색함까지 너무 크게 다가왔던 게 아닐까. 그때는 분명 아무리 봐도 너무 진하고 크고 심하고 아무튼 도무지 시간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망한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았는데. 다 해결되고 나서 보니 뭐 별로 그렇지도 않다. 그 기분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불안함 초조함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의 이성을 잡아먹는지. 신기할 정도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눈과 귀를 막아버린다. 수백 번 마음먹은 일인데도 당장 내 눈앞에 닥치니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며 잔뜩 치우친 생각 속으로 풍덩 빠져버린다. 예방 주사를 맞았는데도 이러면 갑자기 닥친 상황에서는 사람이 어떻게 침착하고 객관적일 수 있겠냐구.


 뭐, 오히려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의 불안함과 초조함이 얼마나 부풀려진 것인지도 알 수 있다. 당장 내 일이니까, 너무 소중하고 중요하니까, 혼자 왕창 괴로운거지. 돌이켜보면 내가 나를 조금 더 믿어줬어도 좋았을 텐데 싶은 순간들이 많다. 충분히 잘하고 있었는데 혼자 벌벌 떨었던 어리숙한 나.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불안함을 떨쳐 내는 강한 사람이 되긴 힘들겠지만. 그럴 때마다 거울 속에 눈썹을 보면서 조그만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다! 아무리 마음을 다져 놓아도 생각보다 괴로울 거야. 근데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을 테니까. 믿어봐.


 

작가의 이전글 어쩔 수 없이 아플 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