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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Dec 14. 2023

허상욱 "분청산책"_지우헌

참으로 동그랗고 단아하고 화려하고 정갈했다. 

도자기가 그랬고 한옥은 도왔다. 


정독도서관 자락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 지우헌에 도착했다. 바로 들어가지 않고 뒤를 돌아 뻥뚫린 삼청동 일대를 내려다 보니 이미 마음이 해사시 하다 


허상욱 
분청산책 
23.11.1 ~12.16 (전시연장) 
지우헌


한옥문을 열고 들어와 오른쪽 움푹 파인 곳으로 들어오니 바로 보이는 광경. 

실내인데 자연 속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분명 돌이고, 흙에서 나온 차가운 도자들인데 따뜻한 정서가 몽글하니 마음에 퍼졌다.


작은 자갈들 속의 동그랗게 피어난 도자들도 너무 아름다운데 고가구 위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이 아이들도 역시 형용할 수 없이 예쁘다. 순백의 도자가 아니라  흠을 내고 거칠게 툭툭 뿌려 놓은 색과 폭 넓은 나뭇잎 문양의 오묘한 조화가 신비롭다. 도자가 주로 편병의 형태가 더욱 이색적이다. 


이렇게 두개의 도자가 하나는 아래에 다른 하나는 위에 자리 잡고 위아래 벗으로 사귀는 듯하니 보기에 참 좋으네


내가 이 도자들이라 내 있을 곳을 정할 수 있다면 이 가구 속에 쏘옥 들어가 있고 싶다. 아늑하고 따뜻하며 언제라도 부르면 올 친구가 윗층에 사는 것도 같고 


화분으로도 그 자체의 미적 가치로도 훌륭한 도자가 유리벽 바깥에 오로이 또롱이 처럼 줄지어 있다. 저 도자에 식물을 키운다면 식물은 그저 도울뿐 그 아래 생동감 있는 잎사귀들이 더 감상포인트가 될 것이다. 벽면을 장식하기에도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작품들도 있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고오급 진 페어

가구도 도자도 이리 정갈한데 그렇게 화려할 수가 없다. 


화려하다는 감정은 다양한 색, 복잡한 디자인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구나...


은은한 웜톤 조명과 나이테가 잘 살아있는 받침과도 잘 어울리는 작품들

유리벽 밖 돌을 이용해 만든 정원배경은 안쪽 도자들을 더욱 따뜻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공간 


분명 남준이 인스타에선 외부정원 같은 곳에 동그란 돌들이 있었는데,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데도 없어 내 기억이 잘못된건가 갸우뚱 하는 중에 지우헌과 관련이 있으신 듯한 분이 사유지 공간을 조용히 열어 주셨다. 실제 사람이 사는 곳이고 지금 계셔서 막아 두었는데 어떤 포인트에서 나에게 문을 열어줘야 되겠다 판단하신건지 그 공간을 내주셨다. 


천천히 보세요, 나지막히 말씀하신다.  


덕분에 남준이가 본 공간, 나도 내 눈에 담았다. 


입구에서 안 쪽을 볼 때도 좋지만 - 도자 뿐만 아니라 반듯하게 놓인 고무신과 그 위 나무 발 디딤대 부분, 그 반대쪽 수탉 모양 작품도 - 안쪽에서 처마를 끼고 바깥을 바라볼 때 걸리는 공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담 밖으로 보이는 다른 집 처마와 그 위 하늘과 내집 지붕 아래 풍경과 그 아래 작은 연못, 거기에 그 공간의 화룡점정처럼 세 점의 유난히 신비로운 느낌의 분청사기 작품 


갓벽하구나!


이 날은 친구의 1주기라 아침에 친구에게 다녀와선 내내 마음이 심란했는데 그 마음이 이 아름다운 분청사기 작품들을 보며 말로 할 수 없는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 


나의 날이 이러해서 더욱 기억되고 고마웠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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