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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Dec 16. 2023

유근택 "Reflection"_갤러리현대

요즘은 볼 전시를 진작에 정해놓고도 연말연초가 바쁜 업의 특성 때문에 거의 종료 임박해 간신히 다녀오고 또 글을 쓰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내 이래서 프로젝트 두개를 병행하지 못한다 어필한건데, 월급쟁이가 맘대로 안되네, 안돼...


현재 삼청동을 씹어먹는 중이라는 유근택의 "Reflection"

그는 무엇에 기대어 무엇을 반영해 내고 싶었던 걸까


유근택 
REFLECTION 
23.10.25 ~ 12.3 (종료) 
갤러리 현대 


1층에서 이미 그의 작품 수준은 다 봤다. 


멀리보니 판화같았는데, 우리의 한지를 여러겹 배접해 그 위에 템페라, 과슈, 잉크를 이용해 그린 그림들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겹겹의 한지 위에 철솔을 문지르거나 두드려 화가는 그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캔버스에 유화'로 간단히 소개되는 보통 화가의 작업방식들이 갑자니 너무 소소해 보인다. 


유근택의 작업 중 유명한 <창문> (위), <이사> (아래)시리즈들 


한지를 이용해 입체감을 살리고 그 위에 색을 바르는 방식은 내가 미리 알게 된 정영주와 비슷하다. 정영주가 여성적이고 동화적이며 그 어떤 한국인의 노스탤지어 같은 정서를 만진다면 유근택은 조금 더 고독하고 사실적이며 사색적이다.


나는 <창문> 시리즈 보다 <이사> 시리즈에 더욱 눈이 갔는데, 처음엔 끈으로 칭칭 동여맨 상자나 화분들이 미이라를 싸 놓은 관처럼도 보였고 시체를 묶어 바다에 수장한 모습 처럼도 보여서다. <이사>라는 제목을 알고 나서야 편히 보았지만 그 어느 구석에도 등장하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독특하게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갤러리 현대의 구조를 알고 있어 그 다음 지하1층엔 1층보다 더 단단하고 침잠되는 그림들이 있을 줄 알았더니 사방이 쭉쭉 뻗는 물줄기와 팡팡튀는 물방울의 분수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그저 싱그러운 분수를 표현하고자 했다면 한지에 이런 탁한 색감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설명지에는 코로나시기를 지나면서, 그리고 부친의 죽음을 겪으면서 작가는 분수의 순환운동이 생명의 윤회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한다 했다. 그런 해석이 그림으로 표현되니 분수의 청량한 에너지 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움직임과 흐름에 방점이 찍힌 작품들이었다. 



2층에 올라왔다. 

온통 노란색의 캔버스가 나를 맞는다. 


온통 노란 나무숲을 뒤로 하고 호수 앞에 선 화가(또는 나, 또는 그 누군가)는 물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이목구비가 없는 그림 속 인간은 호수에 반영된 모습은 희고 크며, 현실의 그림자는 검고 휘어 있다.  


물에 비친 나와 내 뒤의 나 중 실존하는 나는 어느쪽에 더 가까울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호숫가에 비친 나무들의 모습.

작가는 이 장면은 그림의 아랫 부분을 둥글려 카메라 렌즈가 대상을 포착하듯 표현했다. 


화가의 자화상 


한지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에 그린 것만으로 담박하게 그림이 돌아왔는데, 표현방식은 색을 가지고 놀 듯, 다이내믹하다. 인물은 평범한데 표현이 전위적이니 인물도 다차원으로 보인다. 


나는 여러 Relection을 표현한 작품들 끝에 전시된 이 두 점의 자화상이 좋았다.  


특히, 거울에 비친 (반영된) 화가를 그려놓은 그의 자화상이 좋았다. 


처음엔 그냥 꽃정물이려니 했는데 타이틀이 <자화상>이라고 해서 들여다 보니 화가가 거울에 들어앉아 있다. 


오묘하네...


거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켜 놓은 나 자신 


이 작품엔 다시 한지와 템페라와 과슈가 돌아왔다. 그래서 인물도 더욱 입체적이다. 


거울을 통해 한번 인물에 변주를 주고 한지를 입혀 입체성을 높이니 근래 본 자화상 중 기법적으로 가장 훌륭했다. 


오늘 본 여러 작품 중 나에게 한점 고르라면 나는 이 거울 안에 들어앉은 화가의 자화상을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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