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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Aug 09. 2022

부모의 습관

 연분홍 꽃들을 떨구어 낸 벚나무에 파릇한 이파리가 녹색으로 짙어졌고, 매미들이 거기에 달라붙어 여름이라는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났고 우리들은 육아에 지쳐 에어컨 바람 아래 더운 몸을 식히던 무렵이었다. 어머님께선 그런 우리가 가여웠는지 '아이들을 봐줄 테니 부부끼리 잠시 나갔다 오라'는 제안을 하셨다. 둘째가 막 젖을 뗀 무렵이라 엄마가 없으면 찾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 업혀 자라온 두 녀석이라 우리 부부는 그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때마침 인근 워터파크에서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표 두 장을 구입했다. 물놀이 기구를 준비하는 엄마 아빠에게 다가와 물안경을 만지작거리던 두 녀석은 이내 시시해졌는지 로봇 장난감으로 바꿔서 놀았다. 두 놈을 집에 두고 나갈 때까지만 해도 처녀 총각시절 데이트할 때가 떠올라 미안함 마음을 설렘으로 감출 수 있었다. 그렇게 장모님과 두 아들을 집에 둔 채 우리 부부는 물놀이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샀다. 수유하느라 커피와 탄산을 끊었던 아내는 모카라테를 주문했고 나는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차가 조금 막혔지만 그것마저 기분이 좋았다. 실내 락커에서 나는 비릿한 락스 냄새까지 향긋하게 느껴졌고 점심은 돈가스와 우동을 먹기로 약속했다. 우리 부부의 마음은 물에 뜬 튜브처럼 둥둥 떠다녔다.


 아내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뭔가 좀 허전하지 않아?’라고 물은 건 유수풀을 세 바퀴 돌고 난 다음이었다. 아내는 오전의 설렘이 모조리 사라졌다 했고, 아이들이 보고 싶다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라고 고백했고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놀고 가자고 달랬다. 우리는 미끄럼도 타보고 비치의자에 누워 셀카도 찍어 봤지만 아이들이 없는 허전함을 달랠 순 없었다.


 약속했던 돈가스와 우동을 뒤로하고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젖은 머리를 말리며 우리는 집으로 영상통화를 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확인했다. 어머님께서는 아이들은 잘 놀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투로 말씀하셨지만 우리 부부는 손목의 워터파크 종일권을 가위로 자르고 짐을 챙겼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는 우리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워했다. 결혼 전 8월의 물놀이 데이트는 1년 내내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될 만큼 설레고 기뻤던 놀이였는데 아이들이 없다고 그 놀이가 이제 재미없다 했다. 물놀이장의 아이들이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마치 우리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로 들려 우리들은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


 얼음이 다 녹은 아메리카노와 모카라테를 마시며 우리 부부는 매미들이 울어대는 벚나무를 지나쳤다. 아내는 벚나무의 초록 잎이 싱그럽다 했고 나는 매미의 저 소리가 시끄럽지만 듣기 좋다며 이야기 나누었다. 비록 우리의 아름답던 연애는 분홍 벚꽃처럼 져버렸지만 그 자리엔 영글은 우리의 인생이 초록 잎이 되어 태어났고, 우리의 품 안에 매미처럼 아이들이 안긴 채 맴~맴~ 운다고 말했다. 아내는 내 말에 조그만 미소를 남기며 차창을 열어 매미 소리를 더 크게 들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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