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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Sep 11. 2022

아이들의 언어

 '찬아,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니까 나가 노는 건 안 되겠다. 조금만 참자.'


'응, 아빠. 근데 미세먼지가 화 많이 났어?'


 아빠와 함께하는 오랜만의 주말이라 잔뜩 들떠 있던 아들과의 아침 식사 자리 대화였다. 나는 아이의 물음에 무심코 '응'이라고 했지만 도대체 왜 미세먼지가 화나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만화영화에서 본 캐릭터가 화내는 장면을 연상하고 그러는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아파트 안으로 난 꼬불꼬불한 작은 공원길을 지나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현관 벨을 누르고 나래별반 담임선생님이 나오기까지 기다렸다. 조약돌만 한 아이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먼저 온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어린이집은 왁자지껄했다. 선생님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에 시선을 두던 중 나는 무심코 날씨 게시판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곧 배시시 미소 지었다.


 '아빠 미세먼지가 화났어?'


 날씨 게시판엔 아이들의 야외 활동을 위해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를 게시되어 있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파란색과 녹색의 동그란 캐릭터가 웃고 있었고, 나쁜 날은 황색의 캐릭터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미세먼지가 매우 나쁜 날은 빨간색의 캐릭터가 잔뜩 화가 난 채 서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아이의 말 뜻을 이해했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내용을 그림에 담긴 내용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아이의 동심에 무한한 감동에 빠져있을 때 담임선생님이 나오셨다. 나는 아이의 손을 선생님에게 건네고 난 후 아이와 인사했다. 그날따라 아이는 더 귀여웠고 더 대견했다.


 아이는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고 말도 곧 잘한다. 어렵지 않은 내용은 그림이 없어도 책으로 읽어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집에 TV가 안 나온다며 큰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며칠 전부터 말썽인 공유기 문제였다. 아이는 TV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었고 나는 공유기 전원 리셋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찬아, TV 오른쪽에 보면 검은색 네모난 상자가 보일 거야. 그 상자 옆에 스위치를 껐다가 켜야 돼. 할 수 있겠어? 아빠가 집에 가서 해줄까?'


'TV 오른쪽?'


나는 아이가 과연 공유기를 잘 찾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TV 옆에는 셋탑박스와 게임기, 스피커 등 가전기기가 많아 복잡했다.


'아~ 이거 뿔난 거? 뿔 4개 있어.'


나는 아이가 공유기를 단번에 찾아낸 거에 놀라며 또다시 화난 미세먼지를 떠올렸다.


'응 그거 맞아. 그 옆에 스위치 있는데 그거 한 번 껐다 켜면 돼.'


아이는 '응 이제 됐어'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끊긴 전화기를 한참이나 손에 잡고 있었다. 양쪽 입꼬리가 또다시 슬그머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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