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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Nov 05. 2022

D 이야기

D를 만난 날은 눈이 펑펑 오던 날이었다. 호프집이었는데 눈이 어찌나 많이 오던지 손님이라곤 D의 일행 두 명과 우리 일행 3명이 다였다. 당시 나는 공군사관학교의 운항관제 중대장이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두세 살 많은 관제사들과 매일이다시피 술을 먹던 시절이었다. 교육훈련 부대라 크게 바쁠 일이 없었던 나는 부대 인력 관리 차원이라는 명목으로 그렇게 젊음을 소비하고 있었다.


D는 참 당돌했다. 나는 D를 등지고 앉아 창 밖에 내리는 눈과 나의 일행을 번갈아 보며 500잔을 들이켜기만 했다. 근무평정 시기도 끝나고, 부대에 큰일이 없던 때라 아마도 쓸데없는 말들이나 나누었을듯하다. 그때 등 뒤에서 D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이 피처 드실래요? 저희한테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을 거 같아서요."


뒤를 돌아보았더니 D는 3000cc 피처를 한 모금도 먹지 않은 채로 그 무거운 걸 들고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우선 잔을 받아 우리 테이블로 가져다 놓았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아니 왜 더 드시지 않고선'하고 눈인사를 했다. 고개를 바로 돌려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진 못했지만 전형적인 달걀형 얼굴에 머리는 뒤로 당겨 묶어 단아한 인상이었다. 쌍꺼풀 수술을 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눈매로 '저흰 이제 그만 가봐야 해서요'라고 했던 거 같다.


그때부터 모든 신경은 D에게로 향했다. 우리는 일행끼리 서로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락처를 받으라'부터 시작해 '예쁘다' 등 바로 뒤에서 다 들릴만큼의 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윽고 D는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섰고 나는 그런 D를 따라 화장실로 향했다.


호프집은 빌딩 안에 있는 건물이었고 화장실은 복도에 있었다. D가 민망하지 않게 나는 화장실이 보이는 멀찌감치에서 D를 기다렸다. D는 손에 물이 묻은 채로 손을 털며 화장실을 나왔다. D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주 살짝 웃었다. 나는 아주 식상한 멘트를 날렸다. '저기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혹시 연락처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너무 쉽게 D는 나에게 연락처를 줬다. '이제 일어날 거예요?' '네 저흰 내일 학교 가야 해서요.' '아, 학생이시구나.' '좀 늦게 입학했어요.' '내일 그럼 연락드려도 될까요?' '수업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이런 대화들을 테이블로 돌아오며 같이 나눴다. 나는 내 연락처를 알려야겠단 생각에 받은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제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엄청 식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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