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며
2023년 4월 18일 화요일.
79년생 흙수저가 만 43세의 나이로 내 집마련에 성공했다. 2013년 3월에 결혼했으니 만 10년이 지나 있었다. 3학년, 1학년 두 아들을 키우면서 마흔세 살은 84A 타입을 분양받아 성공적(?)으로 내 집에 입성했다. 모든 필요한 과정을 지나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지 못한다고 선언한 날부터 아이들 학교 문제까지 약 10개월을 걱정과 불안으로 잠 못 이루며 보냈다.
관사에서 시작해 원룸으로, 원룸에서 새터민 주거 용으로 쓰였던 ㅇㅇ아파트로, ㅇㅇ아파트에서 방이 두 개 딸린 스무 평대 아파트로, 아이가 태어나며 변두리 서른 평대 아파트로, 회사를 옮기며 수도권의 신도시 아파트로, 집주인이 들어와 산다길래 다시 다른 신도시의 아파트를 월세와 전세로 이사 다니며 살았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차가 있으니까.', '와이프가 운전할 수 있으니까'라며 스스로 자위하며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집마련은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10여 년간 이사를 여섯 번 한 셈이다. 월세는 큰돈이 들지 않아 좋았지만 매달 나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전세는 매달 나가는 비용이 월세에 비해 적었지만 큰돈을 떼일까 봐 걱정이었다. 말이 전세지 80프로는 은행에 대출을 끼고 들어갔던지라 은행에 월세를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좋은 집주인도 있었지만 이사 나가는 날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지 않고 하자 수리로 쓰겠다는 집주인도 있었다. 이사 간 집에서 혼자 쓴 소주를 마시며 이를 뿌드득 갈았던 적도 한번 있었다.
아이들은 새로 이사 간 집에서 팔딱팔딱 뛰며 놀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잘 적응했고 이사 간다는 사실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듯했다. 다만 큰 놈이 일곱 살 때 이사하며 마음이 좀 다쳤다. 장장 380km의 거리를 이사를 오면서 큰 놈은 차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빠 하얀 집 친구들은 이제 못 만나는 거야?'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야, 언제든 갈 수 있어. 차 타고 가서 보면 되지.' 아이는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야 아빠, 너무 멀어서 못 가겠어. 멀리 가면 멀미할 거 같아.'
아내는 아이들을 보느라 뒤에 앉았고 아이 둘도 뒷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그날 아빠가 흘리는 눈물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고 그 눈물을 참느라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떨어진 눈물은 조용히 턱밑에 맺혔고 마흔 무렵의 아빠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