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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Jul 16. 2022

'선생님한텐 관심 없고, 다른 선생님 오시면 말할게요'

학부모에게 나는 그저 '교사 3' 정도의 역할일까

'인생 처음' 겪는 교사로서의 첫 경험이 매일 다르게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최근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간담회를 진행했다. 학부모님들을 초청하여 우리 원의 일과와 놀이를 통해 배우는 영역별 배움, 그리고 QnA까지. 어려움 많은 첫 발표였지만 그리 떨지 않을 거라 자신했던 것은 자만이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평소 발표하던 습관이 익숙하게 느껴져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는데 이상하게도 부모님들이 보시는 앞에서 가장 쉬운 파트를 설명드리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잘 마무리가 되고, 후련함만이 남은 오늘은 그 찰나의 순간에 느꼈던 감상을 남겨보고자 한다.


 다인원 교사로 구성된 우리 학급에서 나는 교사 3이다. 이제 어느 정도 학급의 체계를 익숙하게 느끼실 부모님들은 질문 한 번에 척척 대답하지 못하는 나와는 대화하지 않으시려 하신다. 워낙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라 기민하게 느껴버린 감도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겠으나, 분명히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신 것은 사실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아침마다 교실 문 앞에서 아이들 등원 맞이를 하며 "전달사항은 없을까요?" 여쭈면 부모님들이 그날 그날의 건강 및 안전 관련 특이사항을 전달해 주신다. 그러나 한 아이의 부모님께 내가 다음과 같이 여쭸을 때, "없어요"라고 하며 웃으시는 것을 보았다. 그 후 나는 익숙하게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어머님!"이라고 말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손 씻기 지도를 하기 위해 이동을 했다. 조금 뒤, 간식을 먹이기 위해 교실로 돌아오며 그 부모님이 우리 반 헤드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문 밖으로 보게 되었다. '뭐지? 나한테 분명 다른 전달사항 없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우리 반 선생님이 따로 여쭤보신 부분이 있어서 대답 중이신 건가?'. 그리고 잠시 뒤, 부모님을 배웅하고 교실 문을 닫은 헤드 선생님이 아이의 배변 관련 가정에서의 모습과 식사 관련 요청을 하셨다며 대화 내용을 공유해 주셨다. 어딘가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나한테는 전달 안 하시고 이 선생님께만 전달했을까.


 학급을 이끌어가는 헤드 선생님이 아무래도 중심을 잡고 총책임을 지며 이런저런 학부모님에 대한 대응을 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나는 하는 것 없이 함께 교사로 묶이며 신뢰를 받았을 수도 있고, 내가 해결하지 못한 것들을 대신 해결하시며 막중한 내 몫까지의 책임감을 지니실 것을 알기에 마냥 아쉽다 할 수도 없지만- 왠지 서운함도 크고, 깍두기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7개월 차 초보 교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도 교사인데, 보조교사 취급을 받는 느낌도 나고 서운했다. 내가 그래도 보면 귀여워하는 아이의 부모님이라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등원 시간보다 5분 정도 먼저 내가 교실에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아이와 학부모님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드리며 누구야, 들어갈까?라고 물었을 때, 그 부모님이 내게 대충 이런 느낌으로 말씀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 힘드시면 조금 이따가 다른 선생님 오실 때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당황했다. 내가 이 아이 반 담임교사인데 힘드시면 이따가 들어가도 된다니. 아니라고 손사래 치며 괜찮다고 말했으나, 결국 그 아이는 2분 남짓 뒤 교실에 도착한 다른 선생님에게 맡겨졌다. 나부터를 담임교사라고 생각하지도, 신뢰하지도 못하는 느낌인데 내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부모들에게 애정을 가지며 반응할 수 있을까. 나를 배려하는 부모님들의 감사한 마음이 내포된 말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버거워보이니 그랬을 수도 있다. 반대로 못 미더워서 그랬을 확률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일련의 부모님들의 행동이 내 안에 상처로 남았다는 것이다. 


 굳이 내가 눈앞에서 배웅하고 인사를 해도 머뭇거리며 다른 교사에게 말을 걸려다 인사 한 마디 하시고 돌아가시는 부모님도, 인사하는 내게 시선이 전혀 닿아있지 않고 멀리 있는 다른 교사를 바라보며 목례하시는 부모님도. 내게는 하나하나 상처가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좋은 수업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고, 그다음으로는 안전하게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한텐 관심 없고, 다른 선생님 오시면 말할게요'. 이런 말을 하는 부모님은 직접적으로 없었지만 지금껏 보아온 그 행동들이 내게 이렇게 뚜렷하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간담회를 진행할 때에도, 나를 절대 향하지 않는 시선이 오히려 나에게만 떨어지는 매 같아 따갑고 아팠다. 영화에 나오는 이름 없는 엑스트라 1, 2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교사. 과연 이것이 내가 바라던 교사인가. 초임이기에 '교사들'이란 덩어리로 묶여있으나 실제로는 내 역할까지 두 배, 세 배 노력하시는 메이트 선생님들께 감사하며 지내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배려란 이름 안에 내 실수를 커버해 주시는 것도 많을 것이니 불만 가지지 않는 것이 이로운 일일까. 고민이 많았던 며칠이었다.


 내가 어수룩하고 부족해 보이는걸까? 그래서 이런 취급을 받는걸까. 쓰리담임 체제의 단점을 여실히 실감하고 있다. 원담임의 삶이 차라리 비교군이 없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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